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정보 비대칭성과 자동차 리콜 제도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제도주의 경제학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 두 가지 가정을 한다. 하나는 인식능력의 한계로 인간의 합리성이 제한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들 간의 정보 비대칭성으로 시장에서 기회주의적 행동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기회주의적 행동이란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정보가 부족한 사람과 거래를 하는 경우 정보를 다량 보유한 측이 그렇지 않은 측의 정보 부족을 악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전문지식, 경험 정보 등 거래당사자 중 한쪽만 다량의 정보를 보유할 수밖에 없는 의료 서비스, 고도기술 제품, 중고차 등의 거래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거래에 대해서는 신뢰성 있는 정부기관 등의 보증·인증·확인이 있어야 안정성이 확보되고 거래가 활성화된다. 한마디로 정보 비대칭성은 시장 실패의 한 유형이므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BMW 화재 사건 후 최근 리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현행 법률 규정은 정보 비대칭성의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현행 규정은 자동차 제작자가 자동차에 안전 기준에 부적합하거나 안전 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는 경우 결함 사실을 공개하고 시정 조치하도록 하고 있으며(자동차관리법 제31조 제1항) 자동차 제작자가 이를 불이행하는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시정명령(동법 제31조 제3항)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결함 시정 조치를 제작자의 판단에만 맡기는 한편 관련 형사처벌(동법 제78조 제1항)도 국토부 장관의 명령 불이행이 아니라 자발적 리콜 불이행의 경우 이뤄지도록 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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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결함 시정 조치의 경우 자동차의 결함과 관련해 제작자와 소비자 간에는 정보 비대칭성이 높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제작자 측은 소비자 측의 정보 부족을 악용해 기회주의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 전형적으로 시장 실패가 발생할 수 있는, 따라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분야라는 것이다. 그런데 리콜 여부를 제작자의 판단에만 맡기는 현행 규정은 제작자로 하여금 소비자의 정보 부족을 악용해 리콜하지 않거나 지연시킬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 경우 소비자의 위험은 장기간 방치되고 신속한 피해 구제도 어렵게 된다.

둘째, 처벌과 관련해서는 특히 제작자의 경우 국토부 장관의 명령 불이행이라는 의도적 불법 행동이 아니라 기술적 복잡성으로 리콜 여부를 확정하기 쉽지 않아 시정조치 시기를 놓치면 기소되는 등 불법 의사 없이도 형사재판에 연루되고 국내외적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이 분야가 시장 실패 영역의 하나임에도 마땅한 정부 개입 부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이다.

시장 기능이 잘 작동되는 영역에 대한 정부 개입도 문제지만 정부가 시장 실패 영역을 방치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안전사고 발생시 제작자가 아니라 정부가 신속히 결함 여부를 확인하고 시정명령을 내린 후 제작자가 이를 불이행하는 경우 처벌하는 것이 마땅한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국회의 리콜제도 개선이 정부의 존재 이유를 감안해 합리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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