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내년 경기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투자축소에 나서자 시중은행들도 대출처 확보에 초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업들은 금리 인상에 대비해 회사채 발행 등 자금확보에 적극 나섰지만 갑자기 금리 인하 기조로 급변하면서 대출 타이밍을 관망하는 분위기다. 더구나 경기침체 우려로 기업들이 투자를 중단하거나 축소하면서 사실상 기업대출 수요가 실종됐다. 실제로 태양광전지의 핵심원료인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OCI는 군산공장 증설 투자를 포기했다. 국내 대표 철강사인 포스코 역시 상반기 예정 투자액의 절반밖에 집행하지 못할 정도로 기업들의 설비자금 수요는 바닥 수준이다. ★관련기사 3면
20일 서울경제가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기업여신 잔액을 분석한 결과 지난 7월 말 기준 대기업 여신은 전년 말 대비 1조3,889억원 감소했다. 이런 상황이 연말까지 이어지면 감소폭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이 전년 말 대비 1조7,508억원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나마 중소기업 대출은 각종 정책자금 집행 등으로 전년 말 대비 17조9,754억원 늘었지만 증가폭은 줄어들었다. 반면 자영업자 대출은 전년 말 대비 10조4,285억원 증가했다.
기업대출 수요가 실종되면서 시중은행에는 비상이 걸렸다. 가계대출이 막힌 상황에서 기업대출까지 줄어들면 대출이 역성장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우량 기업대출의 경우 전 은행들이 서로 뺏고 뺏기는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전체적인 대출 수요만 놓고 보면 연말 역성장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부실 우려가 커 쳐다보지 않던 비외부감사 기업 대출에도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비외감 기업은 자산총액이 120억원 미만으로 회계법인의 의무적인 회계감사를 받지 않아도 돼 상대적으로 부실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우량 비외감 기업은 은행의 대출 확대로 대출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되지만, 비우량 외감 기업은 정반대 현상을 보이는 풍요 속 빈곤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기업고객 담당 부행장은 “회계 투명성이 높고 부실 가능성이 낮은 외감 기업들은 투자 위축으로 자금 수요가 없거나 자금이 필요하더라도 회사채 발행 등으로 직접 조달해 대출영업이 쉽지 않다”며 “우량기업의 대출 수요가 사실상 실종돼 시중은행마저 새로운 대출수요 창출을 위해 비외감 기업 대출에 매달리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서은영·박한신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