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추석인 13일 전격 방미를 결정하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의 중재에 시동을 건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당초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참석이 불확실했던 문 대통령이 마음을 바꾼 것은 현재 비핵화 협상과 관련 북미 간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9일 ”이달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마주 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을 두고 미국이 ‘고무적’이라고 화답함으로써 양측의 대화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미측 최고 책임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올해 어느 시점에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것인가’라는 질문에 ”어느 시점엔가 그렇다“고 답해 3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 것도 실무협상이 임박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 같은 대화 기류 속에 대북 강경파로 북미 대화의 장애물이 돼 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해임된 것도 미국이 북한에 대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냉각됐던 북미 대화가 재개될 조짐을 보이자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미국행을 전격 결정한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최 부상이 9월 하순 대화 용의 의사를 밝히면서도 미국의 새 대화법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비핵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상태’를 정의하고 로드맵을 그리는 포괄적 합의를 중심으로 한 빅딜을 원하는 반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따른 제재완화 등 단계적 비핵화를 강조하는 스몰딜을 주장하고 있다. 관건은 북한이 일부 비핵화 조치에 따른 제재완화 및 체제 안전보장 요구에 대한 미국의 전향적인 태도를 문 대통령이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문 대통령은 북핵 해결의 로드맵 제시에 따른 단계적 제재완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굿 이너프 딜을 제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방미는 북미 비핵화 협상 외에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와 관련 한미갈등 확대에 대한 우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미국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에 대응한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전례없는 실망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해왔다.
이에 따라 외교가에서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한미동맹의 뇌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 미국 측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비즈니스 관계로 보는 발언을 연이어 내놓은 만큼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등 폭탄 청구서를 제기할 가능성도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거세질 경우 문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번 유엔총회는 일본이 통관 절차에 간소화 혜택을 주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뒤 문 대통령이 참석하는 다자외교 무대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의 부당성을 강조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가운데 유엔 회원국 정상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이와 관련 언급을 할 지도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