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중형조선사, 불황 터널에 M&A 시장서도 찬밥..."과감한 구조조정 나서야"

[수주 가뭄...출구없는 중형조선사]

대우조선해양 품은 현대重처럼

통합 통해 재편 다시 고개들지만

주력 선종 달라서 시너지 적어

업계 "살릴 곳만 살려야" 힘얻어




청산 위기에 몰렸던 성동조선해양이 4수 끝에 겨우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한때 세계 8위였던 성동조선이 부활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지난 2017년 11월 이후 건조 물량이 없어서다. 선박 수주를 위해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이 시급하지만 재무건전성 문제로 손발이 묶인 상황이다. 이에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HSG중공업은 리스크가 큰 선박 건조 대신 블록(철판을 가공해 만든 선박 부분품)을 수주받아 사업을 운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 조선업의 근간인 중형 조선소들이 고사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품어 세계 시장 점유율 20%가 넘는 ‘메가 조선소’를 탄생시킨 사이 중형 조선사들은 일감 부족과 건조량 급감에 시달리고 있다. 조선소가 텅텅 비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와도 찬밥 취급을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처럼 중형 업체들을 통합해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중형 조선소들은 수주에 나설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신규 수주에 필요한 RG를 제 때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할 경우 은행이 선주사에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이다. RG 발급이 안 되면 선박 수주계약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 중형 조선소 고위관계자는 “RG 발급을 못 받으면서 중국에 물량을 뺏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국내 선사들이 발주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부가 혜택을 주는 방법도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5대 중형 조선소 중 하나인 한진중공업은 군함 등 특수선 건조에 특화돼 있어 컨테이너선 등 상선 수주 실적이 거의 없다. 한진중공업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지난 1월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완전 자본잠식은 자본금을 모두 소진해 회사에 빚만 남은 상태를 뜻한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6,874억원 규모의 출자 전환을 확정해 회사의 최대주주가 기존 한진중공업홀딩스에서 산업은행으로 바뀌게 됐다.


대선조선 역시 지난해 매각을 시도했지만 가격 조건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실패했다. STX조선해양은 피나는 회생계획안을 이행 중이다. 중형 조선소 중 수주 실적이 나은 대한조선은 최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지분 23.4%) 매각에서 배제되면서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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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2000년대 후반까지 초호황을 누렸다. 선박 수요가 급증하고 용선료가 폭등하자 선박 발주가 쏟아졌다. 조선업계는 앞다퉈 설비 증설에 나섰다. 거품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터졌다. 선박 가격이 폭락하고 수주량이 급감했다. 수주 절벽에 몰린 국내 중형 조선사들은 저가 수주에 목을 맸다. 출혈 경쟁에 따른 수익 악화를 견디지 못한 성동조선, STX조선 등은 채권단에 운명을 맡기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조선업계에서 중형 조선소들의 ‘통폐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각자도생이 아닌 공동으로 힘을 모아 불황에 대응하자는 논리다. 박종식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지난달 말 ‘한국 조선산업 경쟁력 유지와 중형조선소 회생방안’을 발표하며 “중형 조선소들을 과감하게 통합해 일본의 이마바리 조선그룹과 같이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마바리 그룹은 총 10개의 조선소를 인수해 규모를 키워 재기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중형 조선소의 통합에 대해 “필요하지만 현실화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현재 살아남은 한국 중형 조선소들의 주력 선종이 겹치지 않아 협력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대한조선은 11만톤급 아프라막스 유조선, 대선조선은 소형 선박, STX조선해양은 5만톤급 중형 유조선 등을 건조하고 있다. 비슷한 선종을 건조하는 업체끼리 힘을 합쳐 경쟁력을 키우기가 어려운 구조다. 현재 살아남은 업체들이 전남권과 경남권으로 나뉘어 있어 물리적 거리가 먼 것도 걸림돌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대형 업체들의 경우 합병 이후 주도권을 쥐고 이끌어갈 재무 상태를 갖춘 업체(현대중공업그룹)가 있었지만, 중형 조선소 중에는 이런 역할을 할 재무 상태를 지닌 업체가 없다”며 “업황이 개선되고 총대를 멜 만한 업체가 나와야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살릴 곳은 살리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는 구조조정을 촉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중형 조선소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를 구성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양 연구원은 “대형 업체나 소형 업체들과 달리 중형 업체들만의 협회가 없다”며 “조합 형태로라도 이익단체를 만들면 정부에 연구개발(R&D), 영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기자재 공동 구매를 통해 제조원가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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