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새로 선출된 주지사 스콧 워커가 노조 가입률을 떨어뜨리도록 고안된 일련의 법안들을 통과시켜 공공부문 노동자의 단체협상권을 거의 모조리 박탈했다. 그 해와 이듬해인 2012년, 미국 41개 주 의회에서 투표 자격과 투표 방식을 규제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은 180개를 웃돈다. 대부분은 저소득층 유권자들과 젊은 층,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노년층을 타깃으로 하는 듯 보이는 법안들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건강보험개혁법인 일명 ‘오바마 케어’를 무산시키기 위한 운동으로 시작된 이러한 움직임은 주 단위를 넘어 점차 전국 규모로 확산됐다. ‘오바마케어’는 보수적인 싱크탱크가 제안하고 공화당의 미트 롬니가 주지사 시절 매사추세츠 주에서 이미 시도했던 모델을 토대로 만든 것이지만, 오바마의 법안이 상정되자 우파는 법안이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을 가했고, ‘오바마 케어’가 결국 의회를 통과되자 2013년에는 이에 투입되는 예산을 깎기 위해 16일이나 정부를 셧다운 했다.
미국 듀크 대학의 역사·공공정책학과 교수인 낸시 매클린은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조 무력화, 투표 억제, 공교육 사유화 등의 움직임을 민주주의와 진보적 가치가 붕괴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신간 ‘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는 이처럼 미국에서 ‘반민주주의적이고 반진보적인’ 움직임이 벌어지는 이유를 면밀하게 추적했다. 미국의 진보를 거꾸로 돌리려는 움직임의 설계자가 바로 제임스 맥길 뷰캐넌과 ‘숨겨진 억만장자’인 코크 인더스티리즈의 찰스 코크라는 것을 그들 행적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통해 설파하고 있다.
저자의 방대한 작업은 우연한 계기에 시작됐다. 미국의 사회운동 및 그것이 공공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던 저자가 대표적인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들을 읽던 도중 각주에서 뷰캐넌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프리드먼보다 오히려 뷰캐넌이 미국 자유시장주의의 ‘더 크고 면밀한 밑그림’을 그린 인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1986년 ‘공공선택의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뷰캐넌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충돌하면 자유가 먼저”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자유는 ‘부자의 자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뷰캐넌은 철저하게 부자 편에선 자유시장주의자였다. 그는 ‘자유의 한계(1975)’라는 저서에서 “우리가 지금 관찰하고 있는 정치구조에서는 독재가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독재정치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남부학교의 흑인 차별을 옹호하고, 사회보장제도와 공공기관의 사유화, 공교육의 사유화 등을 주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약화시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미국의 진보를 거꾸로 돌리는 이상한 조짐의 설계자라는 것일까? 저자는 뷰캐넌이 미국이 극우로 향해 가도록 교묘하게 이끌었다는 것을 그의 수많은 활동들로 증명한다. 그의 주장이 교묘하게 대중을 파고들도록 배후에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자금을 끌어오고, 연구소를 세우고, 기업과 연결해 지방정부 및 대학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인재를 길러내고 운동을 대중화시켰다는 것이다.
뷰캐넌이 은밀하게 미국을 극우로 향하게 한 가이드라고 한다면, 찰스 코크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학계와 정치권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한 ‘큰손’이다. 코크는 경제적 자유를 위한 싸움을 이끌 지도자와 사상가를 찾아내서 자신의 부를 공고히 하고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되도록 하는데 아낌없이 자금을 투자했다. 발디 하퍼의 인간문제연구소에 상당한 돈을 기부하고, 뷰캐넌 사상을 신봉, 전파하는 우익단체들에 막대한 돈을 투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책에서 코크가 ‘보수학계의 펜타곤’인 조지 메이슨 대학과 버지니아 대학 ‘토머스 제퍼슨 센터’에서 뷰캐넌이 급진적 우파 사상인 사회공학을 연구하도록 지원하는 데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었다고 폭로하기도 한다.
미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 붕괴의 이상한 조짐이 ‘부자들을 위한’ 경제학자 뷰캐넌의 설계와 억만장자 코크의 자금력이 결합된 작업의 산물이었음을 파헤치는 흥미로운 책이다. 1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