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무자본 M&A 후 주가 14배 널뛰기…"회계분식·공시위반도 많아"

[금감원 기획조사 결과]

2월부터 조사…상장사 24곳 위법행위 적발

CB·유상증자 통해 3년간 1조7,000억 조달

'한통속' 비상장주식·투자조합으로 흘러가

회계법인까지 동원...'작전' 갈수록 고도화




‘기업사냥꾼’ A씨는 사채업자 등으로부터 50억원을 빌려 B상장사를 인수했다. A씨가 들인 종잣돈은 하나도 없었다. A씨는 빚을 다 갚고 부당이득까지 남기려 했다. 이에 B사에서 발행하는 전환사채를 차명으로 취득해 B사에 자금을 넣었다. 이 납입자금은 B사가 비상장법인인 C사의 주식을 사는 데 쓰였다. C사 역시 A씨와 ‘한통속’이었다. B사가 C사의 지분을 원래 가치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살 수 있었던 이유다. 이를 숨기기 위해 A씨는 회계조작까지 했다. 외부평가사를 이용해 B사의 재무제표상 투자자산(비상장주식)을 과대평가함으로써 C사의 지분가치를 5억원에서 50억원으로 뻥튀기한 것이다. 앞서 A씨가 인수했던 B사의 전환사채 역시 ‘작전’ 수단으로 쓰였다. A씨는 전환사채를 보통주로 전환한 후 주가조작을 통해 주가를 부양한 뒤 주식을 처분해 부당이득까지 남겼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부터 이 같은 불법 ‘무자본 인수합병(M&A)’에 대한 기획조사를 벌인 결과 24곳의 위법행위를 적발했다고 18일 밝혔다. 무자본 M&A는 소위 ‘기업사냥꾼’ 등이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는 행태다. 그 자체로 불법은 아니지만 기업사냥꾼 입장에서는 빚을 갚거나 부당차익을 남길 가능성이 높아 불공정거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특히 무자본 M&A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이용이나 공시위반뿐 아니라 회계분식까지 이뤄지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회계분식으로 적발된 곳이 총 14곳(중복)으로 가장 많았으며 공시위반(11곳), 부정거래(5곳)가 그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위법행위를 중복해서 저지른 곳도 6곳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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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을 유용하기 위한 전환사채(CB) 발행이나 유상증자가 뒤따르는 경우도 많았다. 금감원이 적발한 24개사는 최근 3년간 총 1조7,417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 중 74%(1조2,910억원)는 비상장주식 취득이나 관계회사 대여 등 영업활동과는 관계없는 곳에 쓰였다. 미리 만들어둔 투자조합에 회삿돈을 빼돌리거나 B사 사례처럼 비상장주식을 고가에 취득해 부당이득을 취하기 위해 쓰인 돈이다.

이 같은 부당거래를 숨기기 위해 회계조작이 다수 이뤄진 것도 특징이다. 기존에는 단순 횡령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회계법인·기업평가사까지 동원하면서 작전 기법이 지능화·고도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정흠 금감원 회계기획감리실장은 “이번 적발 사례 중에는 로컬 회계법인 등을 활용해 비상장주식 등의 가치평가를 진행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피해는 소액주주에게 전가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24개사의 최근 3년간 주가 최저가와 최고가의 차이는 평균 13.8배로 나타났다. 이 차이가 20배 이상 벌어진 곳도 4곳이나 됐다. 기업사냥꾼들이 주가를 부양하는 과정에서 허위공시나 호재성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장준경 금감원 부원장보는 “향후 조사역량 강화를 위해 무자본 M&A 조사 협의체 인력을 보강할지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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