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시작부터 “분열은 불의”를 외치며 시작했던 보수통합 논의가 또 공회전하고 있다. 최대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을 이끄는 황교안 대표가 대의를 위해 ‘탄핵의 강’을 건너려 하자 당 내외 강성 우파들의 반발이 커지며 통합 논의가 진척됐다. 유승민계 의원들이 주축인 새로운보수당도 통합의 3원칙(탄핵의 강·개혁보수·새로운 집)을 굽히지 않고 있다. 통합보다 결국 총선을 앞두고 느슨한 연대의 길을 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황 대표는 7일 국회에서 하태경 새보수당 책임대표를 만나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나라로 함께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기를 응원한다”며 창당을 축하했다. 이에 하 책임대표는 “보수가 힘을 합쳐야 한다. 해답은 한국당도 새보수당도 보수개혁의 일에 매진하면 반드시 하나의 길에서 만나게 돼 있다”고 답했다. 연초부터 달아오른 보수통합 온도보다 낮은 원론적인 대화다. 황 대표가 보수통합의 3원칙을 수용할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보수 진영은 2020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보수통합’의 불을 다시 댕겼다. 지난 1일 황 대표는 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열고 “통합이 정의이고 분열은 불의”라며 “지금부터 통합의 큰 문을 활짝 열고 통합열차를 출발시키겠다”고 밝혔다.
보수통합 논의는 지난해 11월 황 대표가 “강력한 정치세력 구축을 위해 자유민주세력의 대통합이 필요하다”고 선언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원유철 의원을 보수통합추진단장에 내정하며 통합의 물밑협상을 맡겼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무엇보다 중도개혁보수세력의 중심인 유승민계가 통합의 3원칙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한국당 내의 과거 친박 의원들이 이에 반발하면서 통합은커녕 보수 진영이 더 분열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지난해 12월 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두고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와 국회 본회의에서 정면대결을 펼치며 통합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이런 와중에 1월1일 황 대표가 통합의 배를 다시 띄우면서 직접 행동에도 돌입했다. ‘보수 분열은 불의’를 내세운 뒤 원희룡 제주지사와 이언주 무소속 의원 등 범보수 진영 인사들과 접촉해 통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6일에는 황 대표가 유승민계가 만든 새보수당과 이날 만나는 사실이 공식 일정에 포함되며 보수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황 대표가 이날 보수통합의 3원칙을 전격 수용하며 설 명절 전에 보수 진영이 통합의 틀을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도 무성했다. 하지만 이날 황 대표와 하 책임대표가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는 대화에 그치면서 달아오른 보수통합은 급격히 식었다.
보수 진영 내에서는 핵심은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전날 황 대표가 유승민계가 제시한 보수통합의 3원칙을 수용한다는 소식이 나오자 반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새보수당은 보수 진영의 통합을 ‘보수 재건’으로 부르고 있다. 기존의 보수는 거대보수정당인 한국당이 탄핵을 당하면서 붕괴했다는 시각이 밑바탕이다. 보수 재건을 위해서는 탄핵에 책임이 있는 당내 친박들의 쇄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출마를 밝힌 11명의 한국당 의원 가운데 탄핵 국면에서 당권을 쥐고 있던 대구경북(TK) 친박 인사들은 단 한 명도 없다. 당내 친박 TK 의원들은 바른정당을 만들어 분열한 유승민계 의원들이 탄핵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황 대표가 탄핵의 강을 건너려면 당내 주류세력을 배에서 빠뜨리고 가야 한다. 이들을 총선에서 내치면 당을 지킨 의원들을 버리고 탈당한 의원들을 챙기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다만 보수통합은 느리지만 제 길을 가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중도와 보수 진영의 외연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범여권의 4+1 협의체와 같이 총선에서 연대를 통해 승리하고 이후 범보수 진영 협의체로 청와대와 여당을 견제하는 그림이다. 한 중진 의원은 “보수통합을 위해서는 지역구 분배와 양보, 용퇴 등 많은 이해관계가 조정돼야 한다”며 “통합 없이는 필패한다는 사실을 보수 진영 모두가 알고 있고 통합은 아니어도 연대는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