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아닌 제3국에서 감염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또다시 발생했다. 총 확진자는 19명으로 늘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싱가포르에서 지난달 24일 귀국한 38세 남성, 36세 남성과 16번 환자의 딸 등 3명의 신종 코로나 환자가 확진됐다”고 밝혔다.
17번 환자는 콘퍼런스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후 지난달 24일 귀국했다. 이후 지난 3일 행사에 참석했던 이들 중 말레이시아 출신 확진자가 있다는 회사의 연락을 받고 선별진료소를 방문했으며 진료 후 실시한 검사를 통해 5일 확진됐다. 19번 환자도 같은 콘퍼런스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후 귀국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말레이시아의 확진자 역시 행사에 참석한 누군가를 통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에게 병을 옮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싱가포르 당국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일 확진 판정을 받은 12번 환자가 일본에서 감염된 후 귀국해 증상이 나타났고 감염 경로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16번 환자도 여행지인 태국에서의 감염으로 밝혀지면 3국 감염자는 총 4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제한과 검역에서도 허점이 드러나는 상황인 만큼 검역망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16번 환자가 어떤 경로로 감염됐는지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정 본부장은 “다양한 가설을 가지고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16번 환자를 통한 집단감염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질본은 이 환자와 접촉한 사람 수가 총 306명이며 환자가 입원했던 21세기병원에서 272명의 접촉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중 인대 수술로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딸 1명이 확진됐다. 21세기병원 접촉자 전원은 격리 조치된 상태이나 물량부족으로 바이러스 진단 검사는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이날 2번 환자가 치료 2주 만에 완쾌해 퇴원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 환자가 24시간 간격으로 2회 실시한 유전자증폭검사(PCR)에서 모두 음성으로 확인돼 퇴원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세종=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17번환자, 병원 4번 찾았지만...“중국 입국자 아니다” 일반진료>
[신종 코로나...무너진 검역망]
입국후 격리되기까지 12일간 지역서 외부활동
16번 환자의뢰서 받은 전남대병원도 검사안해
16번 환자 접촉자 308명...병원 집단감염 우려도
싱가포르에서 감염돼 제3국 감염 확산 가능성을 높인 17번 환자는 제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인됐다면 지역사회 노출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환자는 입국 이후 격리되기까지 무려 12일간 지역사회활동을 한데다 증상이 발현된 뒤 병원 3곳을 네 차례나 방문했지만 단순 발열 등의 진단과 관련 처방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을 방문한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신종 코로나 확진 검사를 받지 못했다. 결국 증상 발현 이후에도 보건당국의 통제망 밖에서 활동하다 회사에서 같은 행사에 참석한 이들 중 확진자가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고서야 선별진료소에서 확진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5일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와 구리시에 따르면 17번 환자는 지난달 26일 오후7시에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나자 한양대병원 응급실을 방문해 진료를 받았다. 검사 결과 단순 발열로 판단돼 오후9시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17번 환자의 경우에는 귀국 이후 발열 등의 증상이 있어 한양대병원 선별진료소를 방문했지만 싱가포르 입국자여서 신종 코로나에 대한 의심을 하지 못하고 일반진료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진자의 지역사회 노출을 막을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또다시 놓친 것이다.
이후 회사에서 싱가포르 세미나에 함께 참석한 말레이시아인이 신종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뒤 4일 한양대 구리병원 선별진료소를 택시로 방문해 확진 검사를 받았다. 이후 5일 오전3시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북부지원에서 신종 코로나 양성 판정을 통보받고 오전7시30분 고양 명지병원에 격리됐다. 함께 세미나에 참여했던 36세 남성 역시 같은 날 19번째 환자로 확진됐다. 19번 환자는 4일부터 자가격리를 시행했으며 확진 이후 서울의료원에 격리됐다.
전날 확진된 16번 환자를 처음 진료했던 의사의 신종 코로나 확진 검사 요청도 도리어 방역당국이 막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환자가 처음 병원을 방문한 지난달 27일, 환자의 상태를 의심한 21세기병원 측이 직접 ‘변종 바이러스 폐렴’이 의심된다는 진료의뢰서를 작성해 선별진료소가 있는 전남대병원으로 환자를 전원시켰지만 질병관리본부 콜센터와 보건소에서는 ‘중국 방문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검사를 말렸다. 정 본부장은 뒤늦게 “하루 가능한 검사 건수가 제한돼 중국 방문자 위주로 검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하며 “중국 방문 이력이 없더라도 의사의 판단에 따라 보건소 신고 후 관련 검사를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16번과 17번 환자의 감염 경로 역시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보건당국은 17번 환자와 말레이시아 출신 확진자 모두 싱가포르의 한 확진자에게 전염된 2차 감염자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 현지에서 누구에 의해 감염됐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정 본부장은 “싱가포르에서는 초기 환자가 누구인지 아직 모르고 있다”며 말레이시아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또 다른 환자는 “접촉자가 아니라 공동 노출자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태국을 다녀온 16번 환자의 감염 경로 역시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 본부장은 “잠복기를 고려하면 태국에 있었을 때 감염됐을 가능성과 국제공항 등을 통해 감염됐을 가능성 모두 존재한다”며 “다양한 가설을 두고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태국 내 확진 환자 수가 25명인데, 태국 보건당국과 함께 환자의 동선을 비교하며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16번 환자는 21세기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했고 그와 같은 병실을 썼던 딸이 18번 환자로 확진됐다. 첫 병원 내 감염이다. 환자와 의료진 등이 오랜 시간 같은 장소에서 노출됐던 만큼 집단감염의 위험도 크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날 16번 환자와 접촉한 사람은 총 306명이라고 밝혔다. 환자가 입원했던 21세기병원에서 272명의 접촉자가 발생했고 전남대병원에서 19명, 가족·친지 15명이 포함됐다. 17번 환자의 접촉자는 조사 중이지만 12일간 서울·구리 등 지역사회에 노출된데다 지난달 24일에는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하차해 대구 수성구에 있는 부모님 집과 북구에 있는 처가도 방문했던 만큼 적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의료진 종사자 65명, 입원환자 75명 등은 자택과 광주소방학교 등으로 격리 조치됐으나 물량 부족으로 바이러스 진단 검사는 받지 못하고 있다. 정 본부장은 “7일부터 하루 2,000건 이상 진단 검사를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발표한 12번 환자(일본에서 감염)의 접촉자는 219명으로 전날의 666명보다 400명 이상 줄었다. 정 본부장은 “영화관처럼 넓은 장소에서 잠깐 체류했던 접촉자를 제외했다”고 설명했지만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