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은 앞서 중국과 일본 조선소들이 차례차례 무너졌기 때문이다. 중국 조선소들은 코로나19로 정상조업이 불가능해지면서 후둥중화조선을 비롯해 다롄조선·상하이와이가오차오 등이 잇따라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영국의 해운정보업체 클락슨에 의해 조사된 19개의 중국 조선소들 중 9개는 지난 2월14일 현재 완전히 정지된 상태고 단 한 곳도 선박을 건조하지 못했다. 선박 인도도 한 달가량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말 불가항력을 선언한 일본 조선소들은 중국 수리 조선소의 휴업이 길어진 점이 치명적이었다. 스크러버(탈황장치)를 비롯한 엔진 등 기자재가 제때 공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조선소들은 선주들에 새로운 납기일정을 통보하지 못할 정도로 공급 불안이 큰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들이 중국처럼 직접적인 생산차질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국에서 블록(철판을 가공해 만든 선박 부분품)을 공급받고 있어 적기공급이 이뤄지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불가항력’ 조항에 코로나19를 넣은 것이다. 대우조선해양(042660)의 중국 산둥성 블록공장의 연간 생산량은 20만톤가량으로 전체 매출액의 2% 미만에 해당한다. 삼성중공업(010140)의 저장성 닝보와 산둥성 웨이하이 블록공장은 각각 연간 20만톤, 50만톤 규모로 전체 매출의 4%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기자재와 블록 등 물류 통관이 지체되고 있다”며 “중국 물량 차질이 표면화할 것을 대비해 사내 협력업체 물량을 늘리는 등 비상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은 조선소 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생산이 전면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다. 현대중공업(009540)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이 자리잡은 울산과 거제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조선소는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수천·수만명이 함께 일하는 현장이다. 대면 작업이 많은 탓에 한번 방역망이 뚫리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조선소들은 감염을 우려해 선박 ‘명명식’과 같은 행사들도 전면 취소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예정됐던 액화석유가스(LPG)운반선 명명식을 취소했고 삼성중공업은 이달초 인도된 컨테이너선의 명명식을 건너 뛰었다.
예방을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각 출입문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회사 견학과 방문객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외방문자를 포함한 방문자의 명단을 확인해 체온 체크 등을 진행하고 선박 해상 시운전 직원들의 열도 확인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비상대응팀을 운영하며 방역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홍콩·마카오·대구·경북 지역 출장금지, 사내 행사 중단, 사내선별진료소 운영 등의 조치를 취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여파가 선박 발주 위축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컨테이너선과 벌크선·원유운반선 운임이 급락, 해상 물동량 감소가 가속하면서 발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 중동~중국 항로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일일 스폿 운임은 2만6,000달러로 올 1월 초 대비 4분의1 수준으로 내린 상태다. 올해 1월 상반기 선박 발주물량은 75만CGT로 전년 동기(280만CGT) 대비 73.2% 급감했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운임이 곡두박질 치면서 투자를 준비하던 선주들이 상반기 내내 관망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