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한국 정부가 북한의 마스크 요청에 거절했다”는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보도에 대해 “당장 법적 조치를 검토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 5일 “국산 마스크를 북한에 수출한 게 아니냐”는 국내 일부 언론과 네티즌을 향해 “가짜뉴스 생산에 법적 조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이를 두고 통일부가 최근 한일 양국이 상호 입국금지 제한으로 정치적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를 감안해 또 다른 구설 요인을 자제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통일부는 9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마스크 요청에 거절했다”는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다만 정부 당국에 따르면 통일부는 이 신문사나 기자에 대해 이른바 가짜뉴스 생산 문제로 당장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외신은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대상이 아니다”라며 “상황을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신중한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북한에 대한 보건 분야 지원 의사가 담기자 북한이 이후 마스크 제공을 요구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국내에도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요청을 거부했다고 보도에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3·1절 당시 “북한과도 보건 분야의 공동협력을 바란다”며 “사람과 가축의 감염병 확산에 남북이 함께 대응하고 접경지역의 재해재난과 한반도의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할 때 우리 겨레의 삶이 보다 안전해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통일부가 이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면서도 법적 대응에 나서지 않는 것은 불과 나흘 전 스스로 발표한 입장과 상충된다는 평가다. 만약 요미우리 신문에 법적 조치를 할 경우 정부의 북한 마스크 관련 가짜뉴스 경고 이후 첫 사례가 된다.
통일부는 지난 5일 “최근 북한 의료진이 국산 마스크를 착용한 영상을 두고 ‘우리 정부가 북한에 퍼줬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는데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북한에 마스크를 지원한 사실이 없다”고 적극 해명했다. 이어 “국내 민간단체가 마스크 대북 지원을 위해 대북 반출을 신청한 사례도 없다”며 “정부는 일부 언론이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왜곡된 정보를 사실처럼 보도하는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앞으로 가짜뉴스를 유포·생산하는 데 대해 법적 조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자들의 별도 질문이 없었는데도 선제적으로 강경 대응 기조를 알렸다. 무엇보다 지난 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청와대 맹비난’ 담화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던 모습과 겹치며 크게 대비됐다.
해당 논란은 북한 조선중앙TV에 한국산 마스크를 착용한 북한 의료진이 등장하면서 불거졌다. 영상의 한 의료진은 코로나19 감염 검진을 하면서 ‘유한킴벌리’ 상호가 새겨진 마스크를 썼다. 이 사실을 몇몇 언론이 보도하자 이를 접한 국민들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국내도 마스크가 부족한데 정부가 북한에 국산 마스크를 지원한 게 아니냐’ ‘유한킴벌리가 마스크를 북한에 수출했다’ 등의 추측성 글을 앞다퉈 올렸다.
통일부가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대응을 자제하는 것은 최근 급격히 악화된 한일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이라 하더라도 국내 대다수 언론이 이를 인용한 상황에서 파급력 등이 ‘국산 마스크가 북한에 지원됐다’는 기존 보도와 실상 크게 차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아니더라도 외신에 대한 민·형사적 법적 조치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경우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7시간’ 기사로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기존 보도는 아예 북한에 마스크를 지원했다는 의미였지만 이번엔 한국 정부가 거절했다는 내용이라는 차이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