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공감]완치는 없다 희망은 있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윤리 중 하나는 고통받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대개는 자기 몸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다. 나도 지병이 있는데, 이전의 사고방식은 “다 나은 다음에 책 쓰기, 여행, 운전 배우기, 운동을 하자”였다. 아픈 시간은 삶의 대기실, 의미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몸이 가르쳐주었다. 병은 낫지 않았다. 도대체 완치는 누가 만든 말인가. 죽을 때까지 재발하지 않을 뿐 어떤 병도 완치되지 않는다. 세상은 아픈 사람과 안 아픈 사람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완벽하게 건강한 몸은 없다. 아픔의 차이가 사람의 차이다.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2020년 교양인 펴냄)


예전 같았으면 그러려니 넘겼을 몸의 신호에 예민해진다. 환절기의 약한 기침, 열감, 피로한 몸을 누르는 근육통 등에도 ‘혹시나’ 해서 체크해본다. 나의 아픔이 그저 내 일상을 침범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타인에게 전염될 수 있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뉴스를 주시하듯 내 ‘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여러 자잘한 통증을 달고 사는 것이 결국 몸이고 삶이구나 싶다.



지금 대한민국은, 아니 세계는 앓고 있다. 모두 코로나19가 위세를 부리는 우울한 시절의 끝을 기다리지만, 완전한 끝은 없을 것이다. 여성학자이자 평화학자 정희진이 썼듯 인간의 몸에도, 바이러스로 휘청거리는 이 세계에도 완벽한 치유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고비만 지나가면’ ‘지금만 잘 넘기면’ ‘나만 아니면’이라는 가정은 옳지 않다. 병은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어떤 식으로든 발현될 수 있다.

독일의 과학자 헬무트 발터는 ‘건강이란 병이 잠깐 휴가 중인 상태’라고 정의했다. 병과 아픔을 혐오하고 완전무결한 건강만 예찬하기보다는, 병을 응시하며 거듭 몸과 삶을 재건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건강한 삶을 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보다 건강해지기 위한 길을 찾는 중이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






외부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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