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스웨덴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인사말을 건넨 보웰 웨스틴 스톡홀름대 문학 교수는 “스웨덴 정부가 주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올해 수상자가 됐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영광”이라며 “상금은 500만 크로나(6억460억원)”라고 전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식에 통화 연결 상태도 좋지 않았던 탓에 백 작가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백 작가의 덤덤함에 보웰 교수가 오히려 당황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 작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됐다. 그는 스웨덴 언론 DN과의 인터뷰에서 “믿어지지 않는다. 매우 놀랍고 행복하다”며 그제서야 제대로 소감을 밝혔다.
‘구름빵’ ‘알사탕’ 등의 작품으로 어린이 독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안겨준 백 작가가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정부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전세계 독자를 웃고 울렸던 국민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2년 제정한 이 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올해 후보 리스트에는 67개국 240명 작가들이 이름을 올렸다.
심사위는 이날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전세계에 백 작가의 수상 소식을 전했다. 심사위원장인 보웰 교수를 비롯해 심사 위원들은 백 작가가 “한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이라며 “소재와 표정, 몸짓 등에 대한 뛰어난 감각으로, 영화 같은 그림책이라는 무대 위에 고독과 연대의 이야기를 올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심사위는 “백 작가의 환원적 미니어처 세계에 구름 빵과 달 샤베트, 동물들, 장수탕 선녀님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든다”며 “그녀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아찔한 경이의 세계로 향하는 관문”이라고 호평했다.
백 작가의 2004년 데뷔작인 ‘구름빵’은 고양이 남매가 엄마와 함께 구름 빵을 만들어 아침을 거른 채 허둥지둥 출근한 아빠에게 가져다주는 내용이다. TV 애니메이션과 아동 뮤지컬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누렸고, 캐릭터 상품도 출시됐다. 하지만 책을 낼 당시 출판사와 저작권 일괄 양도 계약을 맺었던 탓에 정작 작가가 손에 쥔 수익금은 2,000만원도 되지 않아 출판계에서 논란이 됐다. 뒤늦게 출판사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냈지만 1·2심에서 패소해 지금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백 작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제 아이 구름빵을 돌려주세요. 작가에게 창작물은 자식과 같습니다”라는 말로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전해진 이번 수상 소식은 백 작가에게 영광인 동시에 큰 응원의 목소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DN과의 인터뷰에서 백 작가는 “어린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어린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린이들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창작 의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