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분이서 오셨나요. 신분증 먼저 보여주세요”
지난 9일 오후 11시30분께 찾은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주로 2~30대 남녀가 즉석 만남을 위해 모여드는 A주점. 기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입구에 들어섰지만 직원은 마스크 착용 여부보다 주민등록증 소지 여부를 먼저 물었다. 입장을 위해 대기한 뒤 착석하기까지 직원은 마스크 착용을 지시하지 않았다. 해당 술집 입구에는 마스크 미 착용 시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술집과 유흥업소 등을 통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이 이어지며 술집 등이 새로운 감염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지만 서울 번화가 내 주점들은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에 무감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지자체는 감염 전파 위험이 높은 술집들에게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예방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는 술집들이 부지기수였다.
앞서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한 확진자가 백여명과 접촉한 것으로 확인되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클럽, 콜라텍 등 서울내 442개 유흥업소에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역시 많게는 수백명 인파가 모여드는 소위 ‘헌팅포차’, ‘감성주점’ 등 밀접 접촉이 빈발하는 술집들을 비롯 일반 주점들은 이번 행정 명령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방역이 오직 업주와 이용자들의 손에만 맡겨진 상황이어서 이곳들이 감염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날 홍대 인근 B주점에도 어림 잡아 백여명 가까운 고객들이 모였다. 감염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거리두기도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 이 업소 출입문에도 마스크 미착용자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있었지만 유명무실했다. 출입자 명단 작성조차 이뤄지지 않아 혹여 확진자 발생 시 경로 추적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해당 주점 직원은 “담배를 피러 왔다 갔다 하는 손님도 많고 직원 수도 한정돼 있어 일일이 마스크 착용을 종용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답했다.
지난 9일 확진자가 나온 것으로 확인된 이태원의 한 바(BAR)가 있는 골목도 대부분 업장이 영업을 이어갔다. 확진자 발생 소식에 다른 지역에 비해 체온 확인, 인적 사항 작성 등이 비교적 꼼꼼히 이뤄진 편이지만 일부 규모가 작은 업장들은 여전히 테이블 사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경우도 발견됐다. 이날 이태원 M술집을 찾은 한 손님은 “사회생활을 아예 안할 수는 없고 회사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왔다”고 말했다.
2주 연장된 사회적거리두기 캠페인에도 술집들이 연일 북적대자 술집도 여타 다중이용시설과 동일한 수준의 거리두기가 시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술집과 마찬가지로 휴업 권고 대상인 헬스장, 무도장, 카페 등 다른 업종의 다중이용시설에서 비교적 엄격한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 중인 한 최모(28)씨는 “호흡으로 전염될 수 있는 헬스장 규제는 이해하는데 더욱 밀접한 접촉 등이 일어나는 술집 등은 규제를 안해서 의아하다”고 비판했다. 현재 상당수 헬스클럽은 휴업에 들어갔고 영업 중인 곳도 샤워장을 폐쇄하거나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앞서 클럽 등 유흥업소들을 통제한 상황에서 (영업 중지 대상이 아닌) 술집 등의 감염 위험이 당연히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전부터 클럽 등을 통한 감염 위험성이 진작 제기됐는데 한번 터지지니까 뒤늦게 나서는 모양새”라며 “앞으로 감염 위험이 높아진 술집 등에 대해서도 미리미리 감시감동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김태영기자 h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