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공감]다시 한 판 하라는 거예요

두명의 아이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중략) 화면 위로 ‘You Failed’라는 문구가 떴다. 한 아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뜻이야?” “실패했다는 거야.” 다른 한 아이의 표정이 덩달아 어두워졌다. 그 모습이 몹시 귀여워서 나는 둘에게 다가가 물었다. “실패가 무슨 뜻인지 아니?” “다시 한 판 하라는 거예요.” (중략) 화면에 ‘Level Completed’란 문구가 떴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나는 그 모습이 기특해서 박수를 쳤다. 한 아이가 물었다. “이건 성공했다는 뜻이야?” “응, 이제 다음 판에 가도 된다는 거야.” (오은, ‘다독임’, 2020년 난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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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자꾸만 ‘You Failed’라고 적힌 경고장을 내밀 때가 있다. 어른들은 이걸 ‘끝났다’로 받아들인다. 하나가 실패하면 다 끝났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인생 전체를 ‘끝장’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꽤 많다. 시인과 아이는 흔하디흔한 말과 행동에서도 새로운 의미와 세상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오은 시인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다가 마주친 ‘실패’를 ‘다시 한 판 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모습을 신선한 충격 속에 바라본다. 아이들은 이 판을 깨고 레벨업될 때도 그게 궁극의 달성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은 ‘이제 다음 판에 가도 된다’는 사인일 뿐 ‘다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어른들은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한다. 아이들은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며 다음 판을 어찌할지에 몰두한다. ‘실패하면 다시 한 판, 성공하면 다음 판’으로 가면 그뿐. 저 아이들도 게임기에서 빠져나와 인생이라는 본판에 돌입하면 우리처럼 별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만만치 않은 인생을 아이처럼 시인처럼 살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배우며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너머에도 다음 판은 있을 것이라고, 기꺼이 믿어보면서 말이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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