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남성 A씨는 2년 전 배드민턴을 치다가 셔틀콕을 맞은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눈 앞에서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겨우 구별할 정도고 안압도 30㎜Hg로 정상(8~21㎜Hg)보다 훨씬 높았다. 눈 앞쪽에 출혈도 있었다. 다행히 약물치료로 2개월 뒤 시력이 호전됐고 안압도 15㎜Hg로 정상화됐다. 하지만 녹내장 발생 위험이 높은 것으로 판단돼 정기 경과관찰을 하던 중 올해 다시 안압이 상승해 녹내장이 발생했다.
녹내장은 시신경이 손상돼 시야 일부가 지워진 것처럼 보이다 주변부가 뿌연 안개처럼, 말기에는 검게 보인다. 대개 노화와 관련이 있지만 A씨처럼 젊은층도 외상으로 안압이 갑자기 올라가 발병할 수 있다. 따라서 스포츠를 즐기거나 걷던 중 다른 사람이나 나뭇가지·모서리 등에 눈을 부딪쳤다면, 교통사고로 에어백이 터질 때 눈에 충격을 입었다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지난해 97만여명 녹내장 진료…2015년보다 27% 증가
건양의대 김안과병원 녹내장센터 유영철 교수는 “녹내장은 조기에 발견할수록 보존할 수 있는 시야가 넓지만 방치하면 실명에 이를 수 있어 조기발견과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며 “눈에 충격이 가해졌다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반드시 안과에 방문해 녹내장 발병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녹내장으로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사람은 97만여명으로 2015년 약 77만명보다 27% 증가했다. 이 중 ‘눈의 외상에 따른 이차녹내장’ 환자는 1,162명으로 많지는 않지만 남성이 80%(935명)를 차지하고 연령층은 고르게 분포돼 있다.
녹내장은 안압 상승으로 시신경이 눌려서 손상되거나, 시신경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망막 신경절세포가 소실되고 시세포의 기능이 떨어져 가면서 악화한다. 고도근시이거나 가족 중 녹내장 환자가 있는 경우, 과거 눈에 외상을 입었거나 스테로이드 점안약을 장기간 투여한 경우, 당뇨·고혈압·갑상선질환·동맥경화증 환자는 녹내장 고위험군에 속한다.
녹내장 환자의 안압이 올라가는 이유는 눈 속 섬모체에서 분비돼 각막·수정체 등에 영양을 공급하는 방수(房水)가 밖으로 잘 배출되지 않기 때문. 방수는 눈의 가장 바깥쪽 막인 각막 끝 부분에 있는 스폰지 모양의 ‘섬유질 필터’인 섬유주를 통해 슐렘관으로 배출된 뒤 혈관계로 운반된다. 섬유주에 문제가 있거나(개방각 녹내장) 눈조리개 역할을 하는 홍채(눈조리개) 등이 섬유주 입구를 막아버리면(폐쇄각 녹내장) 방수가 잘 빠져나가지 못해 안압이 올라간다. 녹내장 환자의 90%가 개방각 녹내장이며 이 중 75%가량은 안압은 정상 범위인데도 시신경이 손상돼 간다. 초기에는 환자가 느낄만한 자각 증세가 없는 경우가 많아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실명에 이를 수 있다.
폐쇄각 녹내장은 대부분 급성으로 발병한다. 안압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구토·안통 등을 호소하며 시력도 갑자기 떨어지므로 응급조치가 필요하다.
◇99%는 안약·레이저·수술 치료로 증상 관리 가능
녹내장 환자는 우선 모양체에서 방수가 덜 만들어지게 하거나 홍채 등 다른 조직으로 잘 빠져나가게 하는 안약으로 관리한다. 배형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는 “녹내장 환자의 70~80%는 안약 치료만으로 안압이 안전한 범위 내로 조절된다”고 했다. 대부분의 안약은 매일 1~2회, 일정한 시간에 한 방울씩 점안하면 된다.
약이 안 들으면 레이저로 섬유주 세포 틈새를 넓혀주거나 1~3차례 정도 수술을 한다. 최종적으로 1%가량의 악성 녹내장 환자 외에는 이런 치료로 증상을 개선하거나 악화를 늦출 수 있다. 수술은 흰자위를 덮고 있는 투명한 결막과 공막(흰자위막)을 째고 들어가 막힌 섬유주의 일부를 잘라내 방수가 결막 아래 공간으로 배출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고 여과포를 넣어주거나 섬유주절제술 대신 튜브·스텐트를 삽입술 등을 한다.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7명 중 1명꼴인 15%가량이 당뇨병을 앓고 있다. 고혈당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면 혈액순환이 잘 안 되고 혈관·신경이 망가진다. 그래서 시세포가 뻗어 있는 망막, 눈 속 대부분을 차지하는 투명한 유리체, 눈 앞쪽의 홍채 등으로 정상적인 혈관 벽 구조를 갖추지 못한 신생혈관이 마구 만들어진 뒤 터지거나 혈액 성분이 누출돼 염증·부종을 일으킨다. 당뇨망막병증, 황반부종, 신생혈관 녹내장이 그 예다.
당뇨망막병증은 당뇨병을 앓은 기간이 5년 이내면 10명 중 2명, 15년 이상이면 7~8명꼴로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다. 신생혈관이 시세포가 몰려 있고 초점이 맺히는 황반부에 침투하면 황반부종으로 초기부터 시력저하가 나타나고 때때로 물체가 휘어져 보인다. 방치하면 실명에 이를 수 있다.
신생혈관이 홍채까지 뻗어 가면 방수의 유출을 방해해 안압이 오르고 안구통증, 결막충혈, 각막부종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신생혈관 녹내장을 유발한다. 이동원 김안과병원 망막센터장은 “당뇨병 환자라면 증상이 없더라도 1년에 한번 이상, 당뇨망막병증 진단을 받았다면 더 자주 망막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