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시한 종료를 앞둔 아시아나항공(020560) 매각이 초유의 여론전으로 치닫고 있다. 신뢰가 무너졌다며 서면으로 재협상에 나서겠다는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의 요구부터 구체적인 조건을 내놓으라는 KDB산업은행의 응수까지 모두 언론을 통해 오가고 있는 상황이다. 계약무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각자 명분 쌓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여론전에 불을 당긴 것은 HDC현산이다. HDC현산은 지난 9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계약시한 연장 가능성은 열어 두겠다면서도 협상 파트너였던 금호산업(002990) 측을 믿을 수 없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HDC현산은 2조2,000억원을 발행해 아시아나항공을 정상기업으로 되돌려놓겠다는 ‘베팅’으로 애경그룹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당시까지 공개된 지난해 반기 말 기준 재무제표를 통해 주식매매계약(SPA)도 체결했다. 하지만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급격히 늘었다. 계약 체결 시점인 지난해 12월 27일 이전 발표했던 3·4분기 보고서상 807%였던 부채비율은 올해 3월 공시된 연말 사업보고서에선 1,386.7%로 치솟았다. 납입자본금마저 까먹는 부분 자본잠식에 빠진 것도 사업보고서를 통해 알려졌다. 2019년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인이 아시아나항공의 내부회계관리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만큼 계약의 기준이 되는 재무제표의 신뢰성 또한 의심스럽다는 게 HDC현산의 주장이다.
주목은 끈 것은 HDC현산이 ‘서면’으로만 향후 논의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힌 점이다. 당시 HDC현산은 보도자료에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언론의 관심도가 높은 민감한 사안인 만큼 서면을 통해 각자의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등 혼선은 최대한 막고 논란의 여지는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향후에도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적시했다.
인수·합병(M&A) 업계에서 향후 재협상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대형 법무법인의 M&A 담당 변호사는 “세부적인 조건을 정밀하게 조율해야하는 M&A 협상을 서면으로 진행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결국 매각 종료시한이 끝난 뒤 있을 책임 공방에서 쓸 수 있는 명분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KBD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맞대응도 석연찮기는 마찬가지다. 채권단이 이튿날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답변은 크게 두 갈래다. 우선 HDC현산이 재협상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해달라는 것, 그리고 향후 협상은 서면이 아닌 대면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HDC현산이 지적했던 기업의 본질가치 훼손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었다.
결국 양측의 재협상이라는 합의점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아시아나항공은 완전자본잠식이 확실시될 만큼 수렁에 빠져 있다. 채권단이 5,000억원 가량의 영구채 인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 금융당국도 인수합병에 대한 결론이 먼저 나야만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한 지원이 가능하다며 못을 박았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HDC현산이나 산은 모두 소송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여론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