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공감]70년간의 불신시대




9·28수복 전야, 진영의 남편은 폭사했다. 남편은 죽기 전에 경인도로에서 본 인민군의 임종 이야기를 했다. 아직도 나이 어린 소년이었더라는 것이다. 그 소년병은 가로수 밑에 쓰러져 있었는데 폭풍으로 터져나온 내장에 피비린내를 맡은 파리떼들이 아귀처럼 덤벼들고 있더라는 것이다. 소년병은 물 한 모금만 달라고 애걸을 하면서도 꿈결처럼 어머니를 부르더라는 것이다. 그것을 본 행인 한 사람이 노상에 굴러 있는 수박 한 덩이를 돌로 짜개서 그 소년에게 주었더니 채 그것을 먹지도 못하고 숨이 지더라는 것이다. 남편은 마치 자신의 죽음의 예고처럼 그런 이야기를 한 수시간 후에 폭사하고 만 것이다. (박경리, ‘불신시대’, ‘20세기 한국소설 15’, 2005년 창비 펴냄)


대하소설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의 초기작 ‘불신시대’는 괴로운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민군 소년병이 쏟아져나온 내장을 어쩌지 못하고 쓰러져 있다. 1957년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이 소년병을 가리키는 말이 ‘인민군’이 아니라 ‘괴뢰군’으로 되어 있었다. 남한에서 북한군을 ‘소련의 꼭두각시’라 깎아내리던 말이 당시 일반에 두루 쓰인 것인데, 그렇다면 대체 이 소년은 왜 그 끈에 묶여왔다가 내동댕이쳐져, 타향에서 엄마만 부르다가 죽어간 것인가. 소년의 죽음을 목격한 진영의 남편도 얼마 후 거짓말처럼 폭사한다. 박경리 작가는 실제로 6.25전쟁통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고 한다. 전후 홀로 살아가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고 토로했을까.



6.25전쟁 70주년, 남북한 사람들의 목숨이 뒤섞여 휴지조각처럼 버려졌던 그 전쟁을 생각한다. 동지라 생각했던 이가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르기에, 더욱 각박하고 사납게 변해갔던 전쟁의 상흔, 슬픈 ‘불신시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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