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야당인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진행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추경안 심사에 출석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발언을 내놓았다. 부동산 대책 실패 논란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 잘 작동하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반박한 것이다. 이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답변과 비교되며 더 절묘한 대비를 이뤘다. 부처 장관이 나라의 내치를 총괄하는 수장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현상을 두고 다른 말을 한 것이다. 정관계에서는 ‘규제가 강할수록 집값이 떨어질 것’ ‘부동산 상승·양극화는 투기꾼이나 이기적인 유주택자 탓’ 등 경제학적 근거와 무관한 여권 핵심 지지자들의 믿음이 여전히 강한 상황에서 정책 방향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이 김 장관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참모들도 현 규제 일변도의 대책이 서울 요지 집값을 더 상승시킬 것이란 걸 충분히 알면서도 충성 지지자들의 신념 때문에 이를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언론탓’ ‘국회탓’ 김현미와 ‘비판 인정’ 정세균, 그리고 조기숙의 ‘일침’
30일 국회 예결위에서 김현미 장관은 이용호 의원의 질의에 역으로 날 선 반응을 보였다. 그는 “집값 논란이 많은데 부동산 대책이 다 실패하지 않았느냐”는 이 의원의 질문에 “종합적으로 다 잘 작동하고 있다”며 적극 맞섰다. “22번째 대책을 낸 것이냐”는 물음에는 “4번째인데 언론이 온갖 것을 다 셌다”며 “숫자에 대해 논쟁할 생각이 없다”고 언론 탓을 했다. 지금까지의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국회에서 세법 등 관련 법을 통과시키지 않아서”라며 국회 탓을 했다.
반면 정세균 총리는 이날 비슷한 질문에 “정부의 많은 노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정책의 실패를 일부 인정하면서 “전체적으로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정부가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근본적으로 너무 많은 유동성이 시중에 풀려 있다”며 “국제적인 저금리 상황이라서 풀린 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하다 보니 부동산에 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의 원인을 차마 정부 정책 탓으로 돌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언론 탓, 국회 탓, 투기꾼 탓을 하지도 않았다. 정 총리는 다주택자 청와대 참모들이 집을 팔지 않은 데 대해서도 “공직자가 솔선(수범)하는 것이 좋다”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페이스북 글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 전 수석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와 부동산에 대해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본처럼 우리도 집값이 곧 폭락할 테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리라’고 문 대통령이 말씀하셨다고 했다”며 “와, 대통령이 참모로부터 과거 잘못된 신화를 학습하셨구나, 큰일 나겠다 싶더라”고 술회했다. 이어 “일본처럼 우리도 곧 집값이 폭락한다던 진보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다 ‘뻥(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됐다”며 “(일본 또한) 중심부는 별로 떨어진 적도 없다”고 전했다.
조 전 수석은 30일에도 “교육은 포기했어도 애정이 있기에 부동산만큼은 중간이라도 가면 좋겠다”며 “국민이 실험대상도 아니고 아무리 대책을 내놓아도 먹히지 않으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서 정책에 변화를 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현미, ‘코로나 총리’ 丁과 달리 실패 인정하면 정치적 위험
국무총리는 행정 각부 장관들을 이끄는 수장 격이기 때문에 정 총리와 김 장관이 부동산 대책에 대해 서로 다른 뉘앙스를 풍긴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다만 이는 해당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이 느끼는 정치적 책임의 무게가 서로 달라서 비롯된 일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우선 정 총리는 김 장관과 달리 부동산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인물로 분류된다. 실제로 지난 1월14일 취임한 정 총리는 지난 6개월간 공식 석상에서 부동산 문제를 거의 언급한 적이 없었다. 산불 등 각종 사건·사고까지 세세하게 챙기면서도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구체적인 주문을 내린 적이 없었다.
‘코로나 총리’라는 별칭처럼 그는 취임 직후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모든 것을 걸었다. 방역에 어느 정도 성과가 났다고 생각되는 순간부터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과 추가경정예산안 확보, K-방역 홍보 등에 집중했다. 정 총리가 직접 나서 부동산 규제를 주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난해 12·16 대책으로 시장이 일시적으로 얼어붙은 상태에서 취임한 데다 코로나19로 올 상반기 시장이 그럭저럭 횡보한 점도 정 총리가 부동산 문제에 관심을 덜 쏟은 이유다.
반면 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3년 이상 국토부를 이끌고 있는 김 장관 입장에서는 부동산 정책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할 경우 그것이 곧 정권의 실패이자 자신의 실패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 현 정부 부동산 대책은 문 대통령과 핵심 지지자들의 기본 철학 아래 청와대가 밑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실무적으로는 재산세 부과 기준 시점이 지난 여름께 시장이 들썩이면 가을께 김 장관이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규제를 들고 나와 서울 집값을 폭등시키고 연말께 기획재정부가 나서 급한 불만 끄는 행태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반복했다. 시장을 흔드는 데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민주당 의원들이 조연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文대통령 지지율 급락하고 ‘반포 갭영민’ 조롱까지
김현미 장관의 태도에 민심 이반이 더 심각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김 장관을 급하게 청와대로 불러 긴급보고를 받았다. 실제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성과로 70%를 넘나들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50%를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도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가운데 다주택자들에게 이달 중으로 1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주택을 처분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지난해 12월에 이미 내렸던 지시를 아무도 이행하지 않아 또 반복한 것이다.
문제는 노 실장 본인도 다주택자라는 사실에서 더 확대됐다. 고향인 충북 청주와 서울 반포에 집을 보유한 노 실장은 애초 반포 집을 판다고 언론에 알렸다가 50분 만에 청주 집을 판다고 정정해 웃음거리가 됐다. 집값, 그것도 강남 집값만큼은 반드시 잡겠다는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정부의 공언대로라면 반드시 가격이 떨어질 것이므로 보유하면 손해를 볼 게 분명한 반포 아파트에, 무슨 이유인지 끝까지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그의 청주 집은 비서실장 퇴임 후에도 넉넉하게 살 수 있는 47평의 주택인 반면 반포 아파트는 방 2개짜리 20평 집이라는 점에서 더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왔다.
노 실장의 서울 서초구 반포4동 한신서래 아파트는 현재 호가 11억원가량으로 준공 30년이 넘어 재건축 추진이 가능한 아파트로 분류된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노 실장이 현재 관사에 살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정부에서 그토록 적폐로 규정하는 ‘강남 갭투자’ 형식으로 반포 아파트를 보유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에 ‘흑석 김의겸’ ‘방배 조국’ ’과천 김수현’ 등과 함께 ‘반포 갭영민’이라는 별칭이 우스갯소리로 퍼졌다. 노 실장의 반포 집에는 현재 그의 아들이 혼자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자들, ‘안될 것’ 알면서 지지층 눈치에 규제 밀어붙이나
2일 김 장관을 만난 문 대통령은 보유세 강화, 재건축 없는 공급 확대 등의 추가 대책을 주문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수요억제 등 규제 일변도 정책은 양극화만 부추긴다는 전문가들 의견이 줄기차게 이어지는데도 정부가 검토한다는 각종 ‘고강도 대책’은 전부 다 기존 철학의 연장선 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정부가 정책 기조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지자들 성화에 핸들을 꺾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전통적 진보진영 핵심 지지자들이 ‘강남·부자·다주택자 등 시장을 왜곡하는 세력을 혼내줘야 시장이 안정된다’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정부를 부추기다 보니 반대 효과만 불러일으키는 ‘홍길동·임꺽정·로빈후드 식’ 정책만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의 폭등기와 이명박 정부 때의 하락·안정기를 거치면서 상황에 따라 어떤 정책이 유효한지 충분히 학습 효과를 겪었음에도 경제에서조차 진영논리를 앞세우다 보니 이제 민주당계 지도자 누가 집권하더라도 정책 방향을 바꾸는 건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이다.
앞에선 “집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면서 청와대 다주택자들 대다수가 몇 년째 자발적으로 여분의 집을 처분하지 있는 점 역시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이 이미 실패했거나, 앞으로도 성공 가능성이 적다는 사실을 고위직들 스스로는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방증으로 지적됐다. 서울 흑석동 재개발지 상가에 전 재산을 던진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나, 30년이 넘어 노후에 살기도 불편한 20평짜리 반포동 집을 끝까지 사수한 노영민 비서실장이 그 대표 사례다. 서울 집값 상승을 어지간히 확신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행동들이라는 평이다.
與지지층 여전히 “더 강하게 규제 안해서 실패” 주장
실제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최근 부동산 시장에 문제가 있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여권 지지층과 나머지 사람들 간 의견이 극명히 갈렸다. 상당수 국민들은 부동산 시장이 망가진 원인을 정부의 잘못된 정책 방향에서 찾고 “규제를 푸는 게 왜 왜 서민들에게도 이익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시장에 맡겨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권 핵심 지지층들은 여전히 그 원인을 이기적인 유주택자들과 투기꾼에서 찾고 “처음부터 그들을 더 세게, 더 강하게 규제하지 않았던 게 잘못”이라고 아우성을 쳤다. 지난달 29일 참여연대 역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실패했다”면서 투기 수요를 근본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세금 규제를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실패했다”는 구호만 같을 뿐, 진단과 대안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다만 정권 핵심 지지층들의 추가 제안이 노영민 실장 같은 처지에 있는 국민들로 하여금 ‘기꺼이 반포 집을 팔게 하는’ 정책인지는 알 수 없다. 실수요자가 아닌 다주택자의 투기가 현 정부 집값 상승과 양극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객관적 증거도 없는 상태다. 자유경제 국가에서 다주택자를 사실상 멸종시키고 전 국민에게 ‘1가구 1주택’을 강제하는 게 현실 가능한 국정 목표인지, 평등의 가치에 맞는 것인지에도 의문 부호가 붙는다. 해당 정책들이 설령 모두 성공한다 해도 극단적인 경우 누군가 전·월세를 살고 싶어도 살 수 없게 되고, 거래가 극도로 줄어들어 거주·이전에 제한을 받게 되며, 일부 무주택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정부에서 제공하는 임대주택에만 평생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