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북미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방한한 7일 “미국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거듭 밝혔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이날 담화를 내고 “때아닌 때에 떠오른 ‘조미(북미)수뇌회담설’과 관련하여 얼마 전 우리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하여 명백한 입장을 발표하였다”며 “사실 언어도 다르지 않기에 별로 뜯어 보지 않아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명명백백하게 전한 우리의 입장이었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앞서 비건 부장관의 북측 카운터파트 격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4일 담화에서 “그 누구의 국내 정치 일정과 같은 외부적 변수에 따라 우리 국가의 정책이 조절 변경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더 긴말할 것도 없다. 북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루어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권 국장의 이번 담화에는 비건 부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북미 협상을 띄우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가득하다.
권 국장은 “(최선희 제1부상) 담화에서는 때도 모르고 또다시 조미수뇌회담 중재 의사를 밝힌 오지랖이 넓은 사람에 대하여서도 언급하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귀가 어두워서인지 아니면 제 좋은 소리를 하는데만 습관되여서인지 지금도 남쪽 동네에서는 조미수뇌회담을 중재하기 위한 자기들의 노력에는 변함이 없다는 헷뜬 소리들이 계속 울려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제 코도 못 씻고 남의 코부터 씻어줄 걱정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관”이라며 “이처럼 자꾸만 불쑥불쑥 때를 모르고 잠꼬대 같은 소리만 하고 있으니 북남관계만 더더욱 망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권 국장의 담화는 북한이 비건 부장관의 방한 첫 날 미국과 남측에 강경 메시지를 발신한 것인 만큼 주목된다. 이 같은 북한의 기조는 미국 국무부가 비건 부장관의 방한 목적으로 김정은 정권이 반발하고 있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가능한 비핵화(FFVD)를 거론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이 원하는 일괄타결식 비핵화 방법으로 북한은 영변 핵 시설 폐기에 따른 제재완화 등 상응조치를 내용으로 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비건 대표 방한에 맞춰 북미협상의 북측 핵심 당국자 두사람이 미리 담화를 내는 것은 진짜 협상에 관심이 없다기 보다는 과거 방식으로는 안할것임을 미리 경고한 것이며 획기적인 제안없이는 움직이지 않을 것임을 제시한 것”이라며 “최선희 등이 나선 것을 보면 북한도 대남 대미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대남 총책인 김여정이 향후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북미 간의 비핵화를 둘러싼 입장 차가 큰 만큼 문 대통령이 구상하는 3차 북미정상회담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열린 한-EU(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미국 대선 전에 북미 간 대화 노력이 한 번 더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비건 부장관은 알렉스 웡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 등 소수의 국무부 관료와 함께 군용기를 타고 이날 오후 오산공군기지를 통해 입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이후 미국의 주요 인사가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는 한국 정부 방침에 따라 미국에서 발급받은 코로나19 음성 결과를 제출하고 입국시 검사와 자가격리를 면제받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