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국내증시

'보이지 않는' 자산, 시총 톱10 주물렀다는데…회계반영은 아직?

삼성전자 '지재권' 등 18조 순증

카카오는 2.3만% 뛰어 3.5조

새 주가분석지표로 논의되지만

인수 프리미엄·시너지 등 가치

수치화된 기준없어 장부엔 '쏙'

"제대로된 기준 확립 서둘러야"

1615A01 코스피 시총 상위 10개사 무형자산



최근 증시를 이끌고 있는 성장주 질주의 이면에는 무형자산의 가파른 증가세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인수합병(M&A)과 연구개발(R&D) 등으로 축적해온 특허와 지식재산권·영업권 등 각종 ‘보이지 않는 가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신산업에 대한 경쟁력으로 본격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지난 10년간 무형자산이 234배나 급증한 카카오의 주가는 불과 넉 달 만에 2배 이상 뛰었고 삼성전자·네이버 등을 비롯한 대장주들도 무형자산의 가파른 증가세와 함께 주가 역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산업구조 변화의 속도가 빨라져 국내 기업들이 ‘초격차’ 전략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무엇보다 무형자산의 가치를 높이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경제가 15일 금융정보분석 업체 딥서치에 의뢰해 현재 시가총액 10위 내 기업의 무형자산 합계를 조사한 결과 2009년 2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33조원으로 30조원 이상 늘었다. 이 기간 삼성전자는 1조2,000억원에서 20조원으로 늘었고 카카오도 150억원에서 3조5,000억원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나타냈다. 주요 기업의 증가율을 보면 카카오가 2만3,441%로 가장 높았으며 삼성전자(1,548%), 셀트리온(1,400%), LG화학(1,261%), 삼성SDI(1,091%), SK하이닉스(456%), 네이버(442%) 등도 지난 10년간 무형자산이 크게 늘어났다. 무형자산은 토지 및 건물·생산설비 같은 유형자산과 달리 형체가 없는 자산으로 특허와 브랜드가치, 영업권, 소프트웨어(SW), 회수 및 측정 가능한 R&D 비용 등을 말한다. 특히 최근 급등한 성장주(IT·바이오·배터리)들은 카카오처럼 M&A를 통하거나 R&D 투자 확대로 무형자산을 늘린 것으로 파악되며 최근 주가도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무형자산이 줄거나 큰 차이가 없었던 포스코와 한전 등 전통적 제조기업들은 시총 순위가 크게 하락해 주가와 무형자산 증가율 간의 뚜렷한 개연성이 확인됐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대의 큰 흐름이 변할 때는 어떤 식으로든 산업이나 기업의 ‘평가기준이 무엇이냐’에 대한 논쟁이 이뤄지게 마련”이라며 “코로나19를 계기로 성장주의 가치평가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과연 무엇이 성장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M&A·R&D가 초격차 핵심…가치 객관화는 '국가과제'





1615A05 시총 상위 기업 무형자산 증가율


10년 전 1,621억원이었던 LG화학의 무형자산이 지난해 2조2,062억원으로 13배 늘었다. 배경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이었다. LG화학은 이 기간 제약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LG생명과학(2017년1월)을, 2차 전지 소재 확보를 위해 GS이엠 양극재사업 부문(2016년11월)을 인수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1조400억원에 이르는 무형자산 중 연구개발(R&D) 투자가 무려 9,911억원에 달했다. 꾸준한 R&D 투자로 셀트리온의 무형자산가치는 10년 새 14배로 커졌다. LG화학과 셀트리온의 주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면서도 지난해 말에 비해 모두 70% 이상 급증했다.

◇무형자산 증감이 바꾼 시총 지형=15일 서울경제와 금융정보분석업체 딥서치의 분석 결과 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 톱10 종목들의 무형자산이 지난 10년간 30조원 이상 급증한 배경으로는 적극적인 M&A와 R&D 투자가 꼽힌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부동의 시총 1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는 무형자산이 1조2,560억원에서 20조7,000억원으로 1,548% 급증했다. R&D 투자와 지난 2017년 하만을 9조2,727억원에 인수한 결과다. 네이버도 무형자산이 10년 새 442% 증가했고 전기차 대표주인 삼성SDI의 무형자산도 1,094% 늘었다. 시가총액도 비례했다. 셀트리온은 10년 전 81위였던 시총 순위가 5위로, 삼성SDI는 31위에서 7위로 뛰어올랐다. 네이버는 25위에서 4위로, 카카오는 128위였던 것이 8위로 뛰었다. 반면 시총 순위가 떨어진 전통 제조업체들은 무형자산이 줄거나 유지되는 데 그쳤다. 무형자산이 87.32% 감소한 한국조선해양의 경우 시총 순위가 10위에서 36위로 하락했고 10년간 무형자산 증가율이 한자릿수에 그친 포스코와 현대모비스는 각각 2위, 8위에서 17위, 14위로 밀려났다. 시총 상위 10위에서 밀린 현대차와 한국전력 등도 10년 전과 비교해 무형자산 증가율이 42%, 71%에 그쳤다.


◇힘 잃어가는 전통적인 ‘성장’의 개념=무형자산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전통적인 유형자산을 중심으로 한 주가 평가 기준인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수익비율(PER)의 유용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PBR과 PER이 낮은 종목은 해당 종목이 보유한 자산과 순이익 창출력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음을 뜻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PER은 160배, PBR은 10.8배 수준이며 셀트리온의 PER은 65배, PBR은 10배다. 기존 지표를 기준으로 하면 두 종목 모두 막대한 ‘버블’이 낀 상태지만 주가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최근 증권가에서 코로나19가 가져온 생활방식의 변화와 초저금리 환경 등 여러 가지 요인들로 성장주 선호현상이 뚜렷해지며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주가 설명 지표 찾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이번 분석 결과는 무형자산에 기반한 새로운 주가분석 지표에 대한 논의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열린 세미나에서 최근 성장주 장세를 설명하기 위해 주가무형자산비율(PPR)의 개념을 제시하며 “PER과 PBR 대신 PPR로 기업가치를 가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경훈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산업환경이 노동집약적 2차산업에서 자본·기술집약의 3· 4차산업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유형자산 축소와 미래 가치창출에 대한 기대감으로 만들어진 무형자산 확대가 나타나고 있다”며 “정보기술(IT)과 헬스케어 관련 업종의 경우 특히 무형자산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눈여겨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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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무형자산 측정기준은 과제=게임업계에서는 최근 시총 11위로 뛰어오른 엔씨소프트의 대표게임 ‘리니지’ 지식재산권(IP)의 가치를 최소 수조원으로 추정한다. 리니지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엔씨소프트는 4,71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재무제표상 리니지IP를 포함한 엔씨소프트의 전체 무형가치는 493억원(1·4분기)에 불과하다. 무형자산 가치가 제대로 측정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무형자산으로 기업가치를 가늠하기에 앞서 현재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플랫폼 기업의 플랫폼, 바이오기업의 R&D 역량, IP와 같은 핵심무형자산을 집계할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재무제표로는 무형자산의 변화를 보고 기업이 M&A와 R&D 등에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보유한 무형자산의 정확한 가치는 확인이 어렵다. 예를 들어 카카오 재무제표의 무형자산 항목에는 다음·멜론을 인수하면서 낸 프리미엄(웃돈)은 잡히지만 카카오톡 플랫폼의 가치와 카카오가 다음이나 멜론과 합병해서 낼 수 있는 시너지 같은 무형자산은 장부에 드러나지 않는다.

바이오기업의 경우 R&D 투자가 이익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으면 무형자산, 그렇지 않으면 단순 비용으로 재무제표에 나타내고 있지만 ‘이익 연결 가능성’ 판단이 기업마다 달라 감사인과 감리를 맡은 당국도, 투자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무형자산의 경우 수치화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악재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며 “IT와 바이오기업이 많은 우리나라는 투자자들이 믿을 만한 무형자산 기준을 만드는 것을 국가과제로 접근해야 해외에서 인정받는 기업을 키워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사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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