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역사만화가 박시백 "선조 헌신 기억하는 건 후대의 마땅한 도리"

일제강점사 다룬 역사 만화 '35년' 완간

7년 대장정 끝 광복 75주년 앞두고 마침표

"친일 부역자들에 대해서도 함께 기억해야"

박시백 작가가 10일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에서 일제강점기 역사 만화 ‘35년’ 완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정영현기자박시백 작가가 10일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에서 일제강점기 역사 만화 ‘35년’ 완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정영현기자



“기나긴 시간 동안 일신(一身)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모든 걸 걸었던 선조들의 노고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후대인 우리가 기억조차 해주지 않으면 그들의 삶이 너무 허무하지 않겠습니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역사 만화의 새 지평을 열었던 박시백 작가가 일제강점사를 다룬 ‘35년’을 완간했다. 7년여 대장정 끝에 마지막 7권을 출간한 박 작가는 10일 광복회관에서 열린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광복 75주년에 맞춰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 홀가분하면서도 아쉽다는 소감을 밝혔다.


1997년 한겨레신문 만평으로 데뷔한 박 작가는 ‘박시백의 그림세상’으로 이름을 알린 후 2001년 신문사를 홀연히 떠났다.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재탄생시키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방대한 작업은 시작한 지 12년이 지난 2013년에야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 완간으로 결실을 거뒀다. 철저한 고증을 기반으로 심도 있는 역사를 다룬 책은 독자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아 무려 200만 부가 판매됐다. 대한민국 만화대상, 부천만화대상 등도 수상했다.



이후 독자들로부터 후속작에 대한 요청이 쇄도했다. 가장 많은 요청을 받아들여 일제강점기를 만화로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독립운동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자료 수집과 공부에 매진하느라 1권을 내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어시스턴트 없이 자료 조사와 정리, 콘티와 밑그림, 펜 작업, 채색 등 모든 과정을 직접 도맡아 했기 때문에 일정이 더뎠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35년’은 일본에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제강점기 우리의 역사를 다룬다. 일각에서는 치욕의 역사로 외면하려 하지만 박 작가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민족이 혼신을 다해 투쟁한 역사이고, 그 저력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고 박 작가는 강조한다.


박 작가는 “선조의 투쟁을 가급적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컸다”며 “그러다 보니 만화적 재미가 떨어진 게 사실이다. 책장 넘기기가 힘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더 많이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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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꼭 봐줬으면 하는 부분으로는 2권(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과 7권(밤이 길더니…먼동이 튼다)를 꼽았다. 박 작가는 “3·1 운동은 유관순이나 민족 대표 33인 만으로 대표되는 운동이 아니라 전 민족이 떨쳐 일어났던 대단한 과정”이라며 “이게 출발점이 되어 우리 민족의 DNA를 형성했고 4월 항쟁, 6월 항쟁도 일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연해주의 별’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사진제공=한민족평화나눔재단‘연해주의 별’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사진제공=한민족평화나눔재단


1~7권까지 등장하는 인물은 1,000명이 넘는다.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협력하기도 한다. 일부는 여전히 공과를 놓고 후대가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소홀히 할 수 있는 인물은 한 명도 없지만 그 중에서도 박 작가는 김알렉산드라, 최재형, 김사국, 손기정 등의 인물이 인상적이었다고 꼽았다. 최재형 선생에 대해서는 “노비 출신인 그에게 나라가 해준 게 하나도 없는데도 나라를 위해 어렵게 일군 부를 모두 쏟아 부었다”며 “새삼 나라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손기정 선생에 대해서는 운동선수 그 이상의 삶이 있었음을 설명하면서 “단순한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 뜨거운 애국자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책에서 다룬 친일 부역자들도 후대가 꼭 기억했으면 한다는 게 박 작가의 바람이다. 그는 “불행히도 친일 부역자들이 해방 후 40년 간 주류로 살아왔고, 이들의 생각과 걸어온 길에 동의, 지지하는 세력은 여전히 강고한 힘을 갖고 있다”며 “최소한 기억을 해서 그들이 누리는 영화가 친일 부역행위의 결과라는 걸 많은 이들이 아는 것도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억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벌써 기대되는 후속작을 묻자 박 작가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고려사와 독자들의 요청이 많은 해방 후 역사를 놓고 저울질 하고 있다”며 “한동안 휴식하면서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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