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文, 日과 대화·남북 협력 외쳤으나...냉혹한 현실 변한 게 없다

[광복절 75주년 경축사]

日에 '개인의 인권' 대화 제안했으나

외교적 노력 어디에..상황은 더악화

北 '안전 공동체' 등 다시 평화 메시지

빗장 잠근 北, 대화 의지 없는 김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는 ‘대화’를, 북한에는 ‘협력’을 당부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속 ‘극일(克日)’을 강조했던 지난해 광복절 연설과는 달리 올해는 ‘개인의 인권’ 이라는 실타래를 통해 한일 관계를 풀어보자는 문 대통령의 제안이 연설문에 담겼다. 아울러 북한을 향해서는 집중호우, 감염병 등을 공동 극복하는 ‘안전 공동체’를 만들어가자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하다. 하지만 강제징용 보상 등과 관련해 한일 외교당국 간 실무적 협의가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다소 ‘공허한 메시지’ 가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북한에 대해서도 수년째 평화·경제 공동체를 강조했으나 남북 관계는 ‘연락 사무소 폭파’ 이후 ‘냉각기’로 접어들었다.


강제징용 언급한 文, 日에 '터놓고 협의하자'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 연설을 통해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 한일 관계의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2005년 네 분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의 징용기업을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대법원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면서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의 ‘불법행위 배상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우리 대법원의 당시 판결에 대해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징용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고,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후 한국 정부는 한일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1+1’ 방안을 제안했으나 일본은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이 될 수 없다”며 거부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대법원의 판결은 대한민국의 영토 내에서 최고의 법적 권위와 집행력을 가진다”면서 “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며, 피해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원만한 해결방안을 일본 정부와 협의해왔고, 지금도 협의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이 자산 압류와 맞보복 등 파국으로 치닫기 보다는 현명한 해법을 찾아보자는 당부로 해석된다.

'개인의 인권' 강조했으나...외교적 노력 안보여


문 대통령은 이날 한일 정부가 양국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는 자세로 이 사안에 접근한다면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날 문 대통령 광복절 연설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명시한 ‘헌법 10조’ 였다.

문 대통령은 강제징용과 관련 “함께 소송한 세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고, 홀로 남은 이춘식 어르신은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되자 ‘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손해가 아닌지 모르겠다’ 하셨다”면서 “우리는 한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결코 나라에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개인이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를 생각한다”며 “그것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는 헌법 10조의 시대다.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는 일본과 한국, 공동의 노력이 양국 국민 간 우호와 미래 협력의 다리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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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문부과학상(장관, 가운데)이 15일 태평양전쟁 패전(종전) 75주년을 맞아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경내로 들어가고 있다.  현직 각료가 패전일에 맞춰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2016년 이후 4년 만이다./연합뉴스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문부과학상(장관, 가운데)이 15일 태평양전쟁 패전(종전) 75주년을 맞아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경내로 들어가고 있다. 현직 각료가 패전일에 맞춰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2016년 이후 4년 만이다./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이처럼 ‘개인의 인권’을 고리로 한일 간 대화를 강조했으나 양국이 처한 외교적 현실은 엄혹하기만 하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지 1년 여가 넘도록 한일 갈등의 근본 원인인 강제징용 문제는 대화가 진행되기는커녕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조만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시한까지 만료돼 양국 관계에 다시 싸늘한 긴장감이 돌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문 대통령의 우호적 메시지와 실제 당국의 외교적 노력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화를 통한 갈등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외교적 차원의 실질적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교 당국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말 청와대가 일본과의 대화 의지가 있기는 있는 것이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외교부 내의 대표적 ‘일본통’으로 알려진 조세영 1차관 마저 전날 차관급 인사로 물러나, 한일 물밑 네트워크 단절 우려도 제기된다.

일본 역시 우리와의 대화에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아베 신조 내각의 각료 4명은 태평양전쟁 패전(종전) 75주년인 이날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해 우리 외교 당국의 거센 반발까지 불렀다. 현직 각료의 패전일 참배는 4년 만에 처음이고 그 인원도 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가장 많았다. 아베 신조 총리는 참배하지 않았지만 야스쿠니 신사에 또 다시 공물을 바쳤다.

北에 '안전 공동체' 제안, 꽉 막힌 남북 관계


문 대통령은 이날 해방과 함께 찾아온 남북분단의 비극을 언급하며 ‘평화로운 한반도’도 역설했다. 남북 평화와 협력은 문 대통령이 수년째 강조한 메시지이긴 하지만 올해에는 여기에 ‘안전 공동체’를 만들자는 제안이 더해졌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가축전염병과 코로나에 대응하고 기상이변으로 인한 유례없는 집중호우를 겪으며 개인의 건강과 안전이 서로에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했고 남과 북이 생명과 안전의 공동체임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역 협력과 공유하천의 공동관리로 남북의 국민들이 평화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체감하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앞서 이번 집중호우 사태 때 북한이 예고 없이 황강댐을 방류하며 침수 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사실상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하천 공동관리 등으로 남북이 ‘생태안전협력’을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는 의미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남북 협력이야말로 남·북 모두에게 있어서 핵이나 군사력의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안보정책”이라며 “남북 간의 협력이 공고해질수록 남과 북 각각의 안보가 그만큼 공고해지고 그것은 곧 국제사회와의 협력 속에서 번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3일 노동당 정치국회의를 열고 수해복구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조선중앙TV가 14일 보도했다. 회의를 주재하는 김 위원장 앞에 안건을 필기한 흔적들이 있다.[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3일 노동당 정치국회의를 열고 수해복구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조선중앙TV가 14일 보도했다. 회의를 주재하는 김 위원장 앞에 안건을 필기한 흔적들이 있다.[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서로의 안전을 위한 현실적 영역에서라도 남북이 협력의 물꼬를 다시 트자고 제안했으나 북한은 빗장을 더 걸어잠그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적어도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전 까지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올 유인이 없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집중호우에 대한 구체적 피해 사실을 낱낱이 공개하면서도 “어떤 외부 지원도 허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번 홍수로 3만9,296정보(약 390㎢)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고 살림집(주택) 1만6,680여세대, 공공건물 630여동이 파괴·침수됐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세계적인 악성비루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전파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은 큰물 피해와 관련한 그 어떤 외부적 지원도 허용하지 말며 국경을 더욱 철통같이 닫아 매고 방역사업을 엄격히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윤홍우·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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