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췌장은 암이 생겨도 티를 잘 내지 않는다. 다른 암들처럼 초기에는 증상이 비특이적이며 췌장이 몸속 깊은 후복강에 있다 보니 위·대장내시경, 복부초음파 같은 검사들로는 조기 발견이 어렵다. 때문에 황달·복통 같은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주변 등으로 전이돼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다만 췌장암 초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 복부 반대쪽인 등과 어깨로 뻗치는 듯한 방사통이 있다면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 췌장암에 의한 통증은 암이 췌장 머리 부위에 있으면 명치 쪽이, 꼬리 부위에 있으면 왼쪽 상복부·옆구리에 주로 나타난다. 담석에 의한 통증처럼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기보다는 기분 나쁜 통증이 지속된다.
췌장 머리에 암이 있으면 황달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소변 색깔이 콜라·홍차처럼 흑색이거나 눈 흰자위가 노랗게 변색되면서 간지러움이 동반되면 황달을 의심해야 한다. 황달은 췌장암이 아니더라도 중증 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많으므로 반드시 병원을 찾을 필요가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소화불량·체중감소·식욕부진, 갑작스런 당뇨 발생, 잘 조절되던 혈당이 이유 없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도 췌장암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장기간의 흡연, 당뇨, 췌장암 가족력, 만성 췌장염은 췌장암 고위험군이므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 흡연은 비흡연자에 비해 췌장암 발병 위험을 약 2배 이상 증가시키는 위험인자. 금연 후에도 약 10년 간은 췌장암 발병 위험이 75%나 높아질 정도로 오랜 기간 악영향을 준다. 음주로 인한 만성 췌장염도 췌장암 발병 위험을 10~16배까지 높이므로 췌장염 환자는 금주해야 한다.
최근 건강검진 때 췌장에 물혹(낭성 종양)이 발견되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 일부는 악성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문의와 상담해보는 게 좋다.
2017년 새로 발생한 췌장암 환자는 7,032명으로 위·대장·폐·갑상선암 등에 이어 8위다. 과거 ‘췌장암=죽음’이라는 생각에 많은 환자들이 진단과 동시에 희망을 잃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진단, 수술·방사선·항암치료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의료기술 발전으로 췌장암 환자의 생존율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국가암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췌장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연도·성별·연령이 같은 일반인과 비교해 암환자가 5년간 생존할 확률)은 2010년까지 8%대에서 2013~2017년 12.2%로 높아졌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10% 미만이고 미국도 10%(2009~2015년)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민국 췌장암 치료 성적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료 성적의 개선은 최근 10년간 도입된 복합 항암화학요법, 과거에 비해 더욱 정교하고 효과적인 방사선치료 등으로 수술 후 성적이 개선된 영향이 크다. 수술이 불가능했던 환자에 대한 수술이 가능해지고 생존기간이 늘어나는 사례도 증가했다. 과거에는 개복수술만 가능했던 췌장 머리부위 암도 복강경수술이 가능해졌고 80세 이상 고령 환자 수술도 늘고 있다. 수술 후 회복 과정의 치료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췌장암은 진단, 수술·항암·방사선치료 등 복합적 진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를 하게 된다. 최근에는 유전자검사 결과를 이용한 정밀의료의 혜택을 보는 환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가족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직계가족에 대한 관리·진료도 이뤄지고 있다. 췌장 낭성 종양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췌장암 전단계에 발견해 치료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현재 수준을 뛰어넘는 췌장암 치료 성적의 개선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재환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