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몬테 파스키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중부 시에나공화국에 창궐했던 페스트는 대중을 극심한 빈곤과 기아로 몰아넣었다. 당시 프란체스코수도회 신부들은 이런 고통을 덜어주고자 가난한 사람들이 맡긴 농기구와 금 조각 등을 담보로 잡고 고리대금업자들에 비해 훨씬 낮은 금리로 생활자금을 빌려줬다. 오늘날 전당포의 원조인 셈이다. ‘은행(bank)’이라는 말이 이탈리아어로 수도원의 돌의자를 뜻하는 ‘반코(banco)’에서 유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1472년 시에나에서 전당포로 출발한 몬테파스키은행은 지금도 이탈리아의 3대 시중은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몬테파스키은행의 공식 명칭은 ‘반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로 현존하는 은행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몬테’는 빌려주는 돈더미를, ‘파스키’는 대출 담보인 목초지를 뜻한다. 몬테파스키은행은 1861년 주세페 가리발디 주도로 이탈리아가 통일된 뒤 시에나를 벗어나 이탈리아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근대식 은행의 모델이 됐다. 지금도 사회구제 활동이라는 창업정신을 지키기 위해 전당포 업무를 지속하며 매달 정기적으로 경매를 실시해 대출금을 제때 갚지 않은 물품을 처분하고 있다.


몬테파스키은행은 2000년대 초반 공격적 인수합병(M&A)에 나서 지방은행을 사들이고 투자은행 분야에도 진출하는 등 덩치를 키워갔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확장과 파생상품 투자 실패로 한때 부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손실을 덮기 위해 독일 도이체방크와 모의해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결국 2017년 이탈리아 정부가 54억유로(약 7조5,782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 지분 68%를 사들인 덕택에 위기를 모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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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정부가 몬테파스키은행 보유지분을 매각해 민영화에 나서기로 했다. 유럽연합(EU)과의 약속에 따라 내년까지 정부 지분 매각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채 규모가 막대해 매각작업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낸 세계 최고(最古)의 은행도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를 맞아 잠시 한눈을 팔면 내일을 장담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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