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에서는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폐기됐던 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21대 국회에서 재추진된다.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면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병원 진료 즉시 병원 전산시스템을 통해 개별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방안을 담은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발의된 것은 21대 국회 들어 세 번째로 지난 7월 전재수 민주당 의원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잇따라 관련 법안을 발의하면서 여야 이견 없이 법 개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층 높아졌다.
특히 병원 등 의료기관이 각 보험사에 진료비 계산서 등의 청구 서류를 전자 전송할 때 이를 중계하는 기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지정하는 방안을 두고 의료계의 반발이 컸던 만큼 고 의원은 심평원이 관련 데이터를 사용·보관할 수 없도록 하고 의료계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통해 위탁업무를 운영하는 내용을 이번 개정안에 추가했다. 20대 국회 당시 의료계는 심평원이 개별 요양기관의 진료 기록을 집적해 비급여 의료비용 통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청구 간소화에 반대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언론 광고 등을 통해 청구간소화법이 보험금 지급 거절을 위한 꼼수로 악용될 것이라는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청구간소화법 도입 지연으로 발생한 사회적 비용이 상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험연구원이 2018년 손해보험사의 실손보험금 청구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가입자들은 팩스(31%), 우편(6%)으로 접수하거나 보험설계사(23%)나 고객센터에 방문(16%)해 제출했다. 전체의 76%가 종이 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한 것이다. 물론 보험사 애플리케이션(21%)이나 e메일(3%)로 보험금을 청구한 가입자들도 대부분은 종이 서류를 촬영해 제출한 경우에 해당해 사실상 종이 문서 기반의 청구가 99%에 달한다. 한 해 약 8,000만건의 실손 청구가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서량만도 연간 3억~4억장에 달한다. 복잡한 청구 절차에 아예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소비자도 전체 가입자의 절반에 육박했다.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 중 47.5%가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소액이라서’라는 답변이 73.3%로 가장 많았고 ‘병원에 다시 방문하는 게 귀찮고 시간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44%, ‘증빙서류 발송 등이 귀찮다’는 응답자도 30.7%에 달했다. 청구 절차가 간소화된다면 소액 청구건도 모두 자동으로 청구되는데다 보험가입자들이 일일이 서류를 발급받고 전송하는 절차를 밟지 않아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 의원은 “낡은 보험금 청구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아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병원에서 직접 발급받은 서류를 별도로 보험사에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 탓에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한다”며 “21대 국회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돼 실손보험 이용자들의 편익이 증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