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쟁적인 사회에서도 질 걸 뻔히 알면서도 옳은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보건교사 안은영’의 은영이도 그렇고. 이야기들을 얼른 머릿속에서 꺼내놓고 싶네요”
올 한 해 활발한 활동으로 돋보인 작가 중 한 명인 정세랑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를 내놓은데 이어 9월에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던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그 시기에 맞춰 지난 2015년 나왔던 원작소설도 특별판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앞서 올 초에는 2010년부터 10년간 발표했던 단편소설들을 ‘목소리를 드릴게요’라는 한 권의 소설집으로 발간했다.
세 작품 모두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후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마니아층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작가는 “독자들의 애정이 계속 작품을 쓸 연료가 된다”며 “지칠 때 충전해주시는 존재”라고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정 작가를 둘러싼 최근의 화제는 단연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다. 영상화 소식이 알려졌을 때 높았던 기대감은 드라마 공개 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보이는 긍정적 반응들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개 시점에 맞춰 나온 원작 소설의 특별판도 다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는 “영상을 통해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가 닿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나를 지켜줄 장난감 칼, 비비탄 총 같은 존재가 될 것 같다”며 “제 글과 영상이 외롭고 지쳤을 때 힘을 주고 응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보건교사 안은영’ 외에도 그가 내놓은 대표작들은 등장인물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대부분은 여성 등 사회의 소수자들이고 상처를 갖고 있다. 사회의 축소판 혹은 모델하우스 같은 공간의 이야기를 선호하다 보니 사람이 자연히 많이 등장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선으로부터,’에는 1남3녀의 형제자매,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십수 명이 등장하다 보니 소설 앞쪽에 나온 가계도를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많다. 2016년 발표한 ‘피프티 피플’은 아예 대학병원 안팎에 있는 50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세랑의 작품에서 그 많은 인물들은 현실의 폭력에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쉽게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은 채 차분하고 현실감 있게 조명되기에 더 눈에 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작가는 “오늘과 내일에만 집중하면 절망하고 지치지만, 시선을 미래로 멀리 던지면 계속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면 마음이 꺾이지만 돌이켜보면 과거가 더 나빴더라”고 말했다.
그는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는 것과 관련, ‘보건교사 안은영’ 극본 작업이 큰 위로가 됐다고 전했다. 정 작가는 “문학계에서는 너무 가벼운 문학을 한다고 은근히 배제되는 편이었는데 영상계에서는 처음부터 두 팔 벌려 환영해줘서 좋았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를 비롯한 순수문학 작품으로 주목받은 반면,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 수록작들은 SF 단편소설이다. 작가 활동도 지난 2010년 당시 장르문학 잡지인 ‘판타스틱’에서 시작했다. 여기에 드라마 극본 경력까지 추가했다. 그는 앞으로도 “경계선 너머를 탐험하며 확장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며 “주제에 가장 맞는 양식에 따라 유연하게 쓰고 싶다”고 말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다음 이야기 역시 그 중 하나다. 그는 “만일 시즌2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구상했던 내용은 책으로라도 쓰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