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이 오는 2030년까지 모든 유형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공시가격이 시세의 90%까지 근접하게 되면서 보유세뿐 아니라 건강보험료도 크게 오르는 등 각준 준조세 부담이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결국 집값 안정을 목적으로 증세를 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공시가격 현실화율 90%라는 것이 낮은 수치가 아니다. 향후 초고가 주택 및 다주택 보유자들의 보유세 과세 부담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현실화율 인상으로 종부세 대상이 되는 1주택자뿐 아니라 중저가 1주택 소유자도 조세 부담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최종안 확정해 곧 발표>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은 27일 서울 서초구 한국감정원 수도권본부에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국토연은 이날 현실화율 목표로 유형에 상관없이 80%, 90%, 100% 등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는데 정부와 여당은 90%로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토연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2030년에 시가의 90%까지 맞추는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토지 65.5%, 단독주택 53.6%, 공동주택 69,0%다.
국토연은 현재 토지·단독주택·공동주택별로 현실화율이 상이한 만큼 목표기한을 서로 다르게 설정했다. 예를 들어 90%에 도달하는 기한을 토지는 8년, 공동주택은 10년, 단독주택은 15년으로 잡았다. 현실화율 90%는 변하지 않고 달성 시점만 협의 과정에서 변할 여지도 있다. 이에 따라 현실화율이 낮은 중저가 부동산의 공시가 오름폭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당정은 29일 당정협의를 열어 1주택자의 재산세 세율을 0.05%포인트 인하하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예상됐던 6억원 이하에서 대상을 9억원 이하로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공시가 현실화로 내년 세 부담이 급증하는데다 임대차 3법의 후폭풍에 따른 전세대란 등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민심이 급격히 악화하자 서둘러 당근책을 꺼내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까지 올리면 서울 강남 등 고가주택 보유자들이 내야 하는 보유세가 5년 뒤 2∼3배 수준으로 크게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 전용면적 84.9㎡ 1채 보유자의 경우 보유세 부담이 올해 1천326만원에서 5년 뒤 3천933만원으로 3배로 껑충 뛴다. 중저가 주택도 세 부담이 제법 크다.
<건보료 등 60여 준조세도 올라>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는 보유세뿐 아니라 다른 세금 및 복지제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공시가격이 재산세·건강보험료 등 각종 조세와 기초생활보장 등 60여종의 행정 분야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건보료다. 현재 정부는 재산 규모에 따라 60등급으로 나눠 건보료를 부과한다. 이때 포함되는 것이 주택 공시가격이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공시가격이 30% 오를 때 지역가입자의 평균 건강보험료는 13.4%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 인상은 만 65세 이상에 적용되는 기초연금에도 영향을 준다. 공시가격 변동에 따라 주택 등을 소유한 노인 중 재산이 기초연금 수급자 선정기준을 초과할 경우 수급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공시가격 인상 시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 중 10만여명이 수급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시가 인상은 국가장학금을 받던 학생들에게까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집값이 올라 국가장학금을 아예 받지 못하거나 덜 받게 되는 학생들이 2만여명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가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실 의뢰를 받아 주택가격 상승률(전년 대비 5.23~9.13%)을 반영해 산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 가계의 소득·재산을 기준으로 국가장학금을 받았던 학생 중 2만4,600여명은 지원을 아예 받지 못하거나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