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불복…분열…혼란 장기화땐 '글로벌 리더' 지위 흔들릴수도

[美 바이든 시대]

■대선 후폭풍…갈라지는 美

승복·포용하는 선거 전통 깨지며

美 민주주의 우월성 이미지 훼손

국제사회 입김 축소될 가능성 커

韓 대미외교 관점도 달라질 듯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8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우편투표를 제외하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8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우편투표를 제외하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결과 승복을 거부하고 새로운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미국의 분열 현상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갈등이 당분간 해소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지면서 민주주의 브랜드를 내세워 전 세계에서 지도력을 행사해왔던 미국이 과거와 같이 국제질서를 리드할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된다. 미국은 그동안 리더 지위의 정당성을 자국 민주주의의 우월성과 높은 인권 감수성에서 찾았다. 그러나 이번 선거 불복으로 글로벌 리더십의 명분이 상당 부분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NN방송의 앵커이자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미국은 이제 유권자들이 내린 선택의 의미를 설명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했다”면서 미국의 양극화 결과에 트럼프를 철저히 배격하려 했던 민주당도 실망감을 맛봤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대선 결과가 공화당과 민주당, 친트럼프와 안티 트럼프 모두에게 큰 숙제를 남겼다는 의미다.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한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9일 추가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전방위적 소송을 제기하며 백악관에서 농성전을 벌이다 조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일인 내년 1월20일 마지못해 집무실을 비워줄 것이라는 게 미국 언론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 기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선거 전 일각의 우려와 같이 전국적인 소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은근히 이들을 선동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대선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보다 상황이 굳었다고 판단되면 어느 한쪽이 승리선언을 하고 패자는 승복선언을 해왔다. 패자는 승자를 축하하고 승자는 패자를 격려하면서 ‘아름답게’ 게임을 마무리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패배가 확정된 후보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소송전으로 맞대응한다면 이를 말릴 마땅한 수단이 없다. 정국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패했지만 ‘정권심판’의 의미로만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도 미국의 분열을 더욱 깊게 만드는 요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 당선인과 함께 7,000만표 넘게 득표했다. 역대 대선 1~2위 득표 기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7,100만 합법적인 투표. 현직 대통령으로는 역대 최고!”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이번 선거는 정치에 대한 냉소 속에 이뤄진 정권심판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다. 세력과 세력이 총력을 동원해 정면으로 대결한 것이 이번 선거라고 해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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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바이든 당선인이 내년 1월20일 취임해도 미국의 분열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공약 이행은 저항에 부딪히고 국민통합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다 써야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을 이끌고 통합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갈라진 미국을 통합시키는 것이 바이든 당선인의 급선무임을 돌려서 얘기한 것이다.

선거 결과를 둘러싼 미국의 혼란이 길어질 경우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의 입김도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그간 선거 민주주의의 우월성과 인권에 대한 인식을 명분 삼아 독재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를 압박해 국제질서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미국이 짜놓은 질서에 저항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독재와 인권 유린을 문제 삼아 채찍을 들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미국식 민주주의가 실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며 명분의 한 축이 훼손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들 또한 건국이념과 공정함·아메리칸드림 등의 가치는 뒤로 하고 ‘눈앞의 이익’을 놓고 분열하면서 미국 시민사회가 국제사회에 보여줬던 모범적인 모습도 상당히 훼손됐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의 분열은 한국과 국제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교본으로 생각하는 기성세대의 시각은 젊은 세대에게는 구시대의 가치관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자유와 정의·풍요가 넘치는 세계의 리더라는 전통적 이미지는 퇴색되고 패권 유지를 원하면서 그 비용은 남에게 전가하려는 나라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 한국의 대미 외교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 또한 과거와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회 이슈와 정치 이벤트에 따라 국론이 분열되는 세태를 종식시키려면 “상대를 악마처럼 만들려는 시대를 끝내자”고 말하면서 정치적 상대를 적이 아닌 통합의 대상자로 강조한 바이든 당선인의 선언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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