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헬기 사격 목격자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89) 전 대통령이 유죄를 선고 받았다. 법원은 5·18 민주화 운동 기간 자국민을 향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고 전 씨도 이를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30일 광주지법 형사 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 씨에게 “피고인은 불행한 역사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라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앞서 전 씨는 지난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이 헬기 사격한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조 신부의 유족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이후 검찰은 전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사자 명예훼손죄의 법정형 기준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1심 재판부는 1980년 5월 21일과 5월 27일 각각 500MD 헬기와 UH-1H 헬기로 광주 도심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음이 충분히 소명됐다며 조 신부가 목격한 5월 21일 상황을 중심으로 유죄를 판단했다. 김 부장판사는 “헬기 사격 여부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쟁점”이라며 “피고인의 지위, 5·18 기간 피고인의 행위 등을 종합하면 미필적이나마 헬기 사격이 있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피해자인 조 신부를 제외한 헬기 사격 직접 목격 증인 16명의 증언을 살펴보면 이 중 8명의 진술은 충분히 믿을 수 있고 객관적 정황도 뒷받침됐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변호인은 목격자 수가 적고 공격형인 500MD 헬기의 1분당 발사 속도로 볼 때 소량 기총소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며 “그러나 끊어 쏘기로 발사량 조정이 가능하고 40년 전 일이고 제반 증거에 부합하는 목격 증인들이 한정됐다”고 설명했다. 광주에 출동했던 군인의 증언에 대해서도 “대체로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일부는 검찰과의 전화 조사에서 ‘위협 사격하라는 소리를 듣고 명령권자를 물어보니 연락이 끊겼다’고 진술하는 등 헬기 사격을 지향하는 진술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재판 내내 한 차례도 성찰하거나 사과하지도 않아 특별사면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고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피해자를 비난하는 회고록을 출간해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다만 이 재판이 5·18 자체에 대한 재판은 아니어서 피해자가 침해 받은 권익의 관점에서 판단했다”고 실형을 선고하지 않은 배경을 밝혔다.
재판부는 선고 직전 “5·18 민주화 운동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피고인이 고통 받아온 많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란다”고 밝혔지만 이날도 전 씨는 재판 내내 조는 모습을 보였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것으로 알려진 전 씨는 지난해 3월 법정에서도 조는 모습을 보여 법률 대리인이 대신 사과하기도 했다. 전 씨는 이날 서울 연희동 자택을 출발하며 시위대를 향해 “말조심해 이놈아”라고 고함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판결에 대해 조 신부의 유족 측은 “사필귀정”이라고 환영하면서도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진 것을 두고 “재판이 진행된 긴 시간 동안 국민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도 형량이 낮아 너무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 씨 측은 항소 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한 가운데 검찰은 판결 이유 등을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광주=김선덕기자 심기문기자 do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