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1일 “다음 서울시 집행부는 ‘범야권 연립 지방정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입당 후 통합경선’을 거절하고 야권이 더 큰 판을 짜 경쟁하자는 뜻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안 대표가 4·15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지역구 무공천’으로 국민의힘을 도운 ‘총선 청구서’ 꺼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철수, ‘선(先)입당·후(後)경선’ 주장 일축
안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연립 서울시 정부’를 통해 야권의 유능함을 보여주고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놓을 것”이라며 “범야권의 힘을 합친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의 발언은 국민의힘에서 분출되는 ‘선(先)입당·후(後)경선’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공관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은 안 대표에 “희생정신을 보여야 한다”며 사실상 입당을 요구했고,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조은희 서초구청장도 “입당해서 공정하게 경선을 치르는 것이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경선룰을 △예비경선 100% 국민여론조사 본경선 △국민여론조사 80%·책임당원 20% 등으로 이미 결정했다. 안 대표가 예비경선에서 이겨도 당원 20%가 참여하는 본경선에서 승리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의 요구는 안 대표에게 “후보를 양보하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이에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이날 “좋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 국민의힘과 ‘당 대 당’ 통합을 통한 공동경선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 따라 야권 통합은 두 가지 정도의 선택지가 남았다. 국민의힘·국민의당 등 범야권 후보들의 다시 통합 경선을 치르거나, 이마저도 실패하면 선거 막판 단일화가 추진돼야 한다. 이 과정도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김문수 당시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와 안 대표가 막판 단일화에 실패하며 선거를 내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安, 국민의힘에 '총선 무공천’ 빚 갚으라는 것
이런 상황에서 안 대표가 “연립 서울시 정부”를 주장하면서 야권통합의 셈법도 복잡하게 됐다. 이는 안 대표가 말하는 ‘야권통합플랫폼’으로 서울시 선거에서 승리해 범야권 인사들이 서울시 지방정부를 구성하자는 제안이다.
정치권에서는 광역지자체장 선거를 위한 ‘당대당’ 통합에 대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 각 지역구 당협위원회와 지방의회 인사들까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다. 당이 합치면 각 당의 당협위원회와 지방의회 인사들도 모두 합쳐야 한다. 이해관계가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안 대표의 ‘야권 연립 서울시’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한 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안 대표가 지난 2월 28일 “이번(4·15) 총선에서 253개 지역 선거구에서 후보자를 내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하며 비례대표 공천만 했기 때문이다. 지역구 선거에 나서지 않으면서 국민의당의 서울시 조직도 축소되며 정리됐다. 안 대표가 말한 ‘연립 서울시’는 시장선거에서 승리하면 사실상 국민의힘의 서울지역조직을 받겠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동시에 안 대표가 국민의힘을 향해 ‘총선 채권증서’를 들이밀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양보하라”는 의미다. 총선 당시 지지율이 7% 수준이었던 국민의당은 ‘지역구 무공천’ 결정으로 야권의 표 분산을 막고 중도층에 지지를 호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의당이 지역구 무공천을 발표한 날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서울 12곳, 경기 6곳의 지역구 등에 대해 후보 추가공모를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안 대표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공천 갈등과 내홍, 막말 등 논란을 겪으며 수도권 선거에서 대패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야권 연립 서울시로 국민의힘이 챙겨야 할 지역구의 이해관계는 본인이 다 챙기겠다고 한 것”이라며 “대신 총선 때 양보한 빚을 갚으라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가 승부수를 던지면서 야권통합을 위한 물밑협상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면 대권도 진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2018년과 같은 분열은 없을 것”이라며 “다만 통합의 주도권을 누가 쥘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