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헨리 조지

186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서 20대 남성이 부유해 보이는 신사에게 5달러를 달라고 말한다.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해산한 아내를 먹일 돈이 없다고 하자 신사는 5달러를 내줬다고 한다. 훗날 미국의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가 된 헨리 조지가 구걸한 이다. 그로부터 16년 뒤 조지는 “만약 그가 주지 않았더라면 너무 절망적인 나머지 그를 죽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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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가난 문제에 천착했던 조지는 1839년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의 한 2층집에서 태어났다. 세관의 서기였던 아버지는 출판업에 손댔다가 망했고 할아버지는 선장이었다. 조지는 가정 형편 탓에 13세 때 중학교를 그만두고 가게 점원, 외항선 선원, 인쇄소 식자공 등을 전전하다가 기자가 된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당한 것에 격분해 그가 쓴 기고문의 글발이 신문사 편집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특채된 것이다.


1879년에 그가 펴낸 ‘진보와 빈곤’은 당대에 300만 부 넘게 팔렸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사회와 기술의 발전에 의해 창출되는 부(wealth)의 상당 부분이 토지 소유자에게 지대(rent) 형태로 옮겨지고 있고 이런 불로소득의 집중이 빈곤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조지는 빈곤의 해결책으로 토지가치세를 제시했다. 다만 “세금은 가능한 한 생산에 부담을 덜 주어야 한다”는 것을 과세의 첫째 조건으로 달았다. 생산 주체인 자본가와 노동자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과세는 곤란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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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최근 헨리 조지를 언급하며 “강력하고도 혁신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부동산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해 논란이 뜨겁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헨리 조지는 인간의 노력이 들어간 건물 등 토지의 가치를 올리는 활동에는 세금을 매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면서 “(참여정부가) 종부세라는 기묘한 세금을 만들었지만 부동산 가격은 기록적으로 상승시키는 실패를 초래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념 편향에 사로잡힌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옹호하려 소환한 조지가 오히려 정책 실패를 부각시키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문성진 논설위원

문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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