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야 지분을 파는 기획부동산들이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산 73번지 지분을 팔면서 개발 가능성과 기대 수익률 등을 마구잡이로 설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아파트를 지을 사람이 있다거나 건설사가 학교를 짓는다는 등의 거짓말도 들은 매수자도 있었다. 개발이 불가능한 땅에 대해 그럴 듯한 설명을 하려다 보니 각종 호재와 전망을 되는대로 꾸며낸 것으로 풀이된다.
26일 서울경제가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산73번지 지분 매수자 53명에 대해 진행한 심층 설문과 인터뷰 결과를 보면 매수자들이 기획부동산으로부터 들은 땅 설명에서 공통점이나 일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땅에 대해 ‘회사가 어떤 용도로 개발될 것이라고 설명했느냐’는 질문에 테크노밸리 31%, 신도시 20%, 아파트단지 11%로 나왔다. 기획부동산 법인 혹은 판매 직원마다 설명이 천차만별이었던 것이다. ‘기타’ 대답도 38%가 있었는데 구체적인 답변을 보면 “이쪽도 좋아질 것”“뭐가 되도 될 것” “어떤 식으로든 개발될 것” “그린벨트가 풀리면 좋아질 것” 등의 모호한 설명이 대부분이었다.
기획부동산 측이 보여준 자료(복수응답)도 매수자마다 크게 달랐다. ‘개발 계획 지도’와 ‘신문기사’가 각각 27%였고 그 다음이 ‘개발 후 그림’(22%)였다. 즉 대개의 기획부동산은 이중 겨우 하나의 자료만 보여주고 구두로 설명을 덧붙였던 것이다. 심지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답변도 19%에 달했다.
◇매수자 21% ‘10배 이상’ 수익 날 거라 들어
기획부동산이 제시한 기대 수익률도 매수자마다 차이가 컸다. 매수자의 49%는 기대 수익률을 구체적으로 들었다고 답했다. 이중에는 ‘10배 이상’이 21%로 가장 많았다. 업체는 이들에게 ‘기하급수적’ ‘무한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다음 많은 답변은 3배가 11%였고 5배가 8%였다.
나머지 매수자들은 ‘기타’를 골랐는데 구체적인 답변을 보면 “굉장히 대박이 될 거라고만 했다” “앞으로 갖고 있으면 돈이 될 것” “크게 보상이 될 거라고만 했다” “주변 시세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등으로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나중에 지분을 어떻게 되팔 수 있다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매수자마다 들은 말이 제각각이었다. 복수응답으로 던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민간 개발업자의 매입’(45%)가 가장 많았고 ‘LH나 지방자치단체의 수용’(21%)였다.
‘기타’를 고른 나머지 답변을 보면 “건설 회사가 학교를 짓는다고 했다” “아파트 지을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이미 개발을 확정하고 계약 중인 곳이 있다고 했다” 등 전혀 사실이 아닌 말을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땅값 오르면 사갈 사람이 있을 것” “테크노밸리하면 (누군가가) 매입할 것” “큰 기업이 들어오면 땅을 사갈 것”이라는 등 추상적인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 설명을 했다.
◇투자 예상 기간 ‘5년 가량’ 34%…‘토지 불패신화 영향‘
매수자들은 투자 예상 기간에 대해서도 다르게 들었다. ‘5년 가량’으로 들었다는 매수자가 34%로 가장 많았다. 단기로는 ‘1년 가량’과 ‘3년 가량’이 각각 13%, 23% 였으며 장기로는 ‘10년 가량’과 ‘10년 이상’이 각각 13%, 8%였다.
매수자들이 이처럼 허술하고 모호한 설명을 듣고도 땅을 매입한 데에는 ‘토지 불패신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서울경제가 매수자들에게 ‘지금도 땅 값이 오를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묻자 41%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언젠간 오르는게 땅이니까” “땅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편이라서” “판교 근처이니 오르지 않겠느냐” 등 시간이 지나면 어느 땅이든 오른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서울경제신문은 기획부동산에서 지분을 매수한 사람들에 대한 표본조사로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산73번지를 선택했다. 기획부동산 33곳이 한 임야를 쪼개 4,800명에게 974억 원어치를 판매한 역대급 사건이기 때문이다. 본지는 지난해 상반기 부동산등기부등본의 매수자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8월 20일에는 전체의 5분의 1인 매수자 961명의 주소지로 우편 발송 업체를 통해 조사 협조 요청 편지를 보냈다. 이후 답신이 온 매수자들에 대해 신원을 확인한 뒤 전화로 심층 설문,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상자는 총 53명(응답률 5.5%)이다.
충북에서 한 중소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58)씨는 “수도권에 유망한 지역이 있다는 말만 듣고 현장을 방문하지도 않고 법인 자금을 덜컥 집어넣었다”며 “‘수도권 땅은 사면 손해 보지 않는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게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직원들에게 부끄러워서 어디에다 하소연도 못한다”며 “소문이 날까 봐서 소송도 진행하지 못하고 대응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매수자들은 상당히 매우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야기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전반적으로 부동산에 대해 지식이 매우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만한 수단을 가지고 있거나 부동산 개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있더라도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박진용 기자 yo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