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여권 잠룡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양상입니다. 한번도 각을 세우지 않았던 후보간에 견제와 비판이 오가는가 하면 각자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한 의제 설정에도 몰두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9개월 가량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벌써부터 경쟁이 과열된다는 우려가 나올만 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균 국무총리, 이재명 경기도지사 유력 주자 3인의 미래권력을 둔 경쟁은 불가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내세운 뒤 이익공유제를 화두로 던진 이 대표와 손실보상제를 강조하며 이례적으로 경쟁자와 각을 세운 정 총리, 보편적 재난기본소득에 화력을 집중하는 이 지사 간 진검승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이재명, 기본 시리즈 앞세워 ‘호남·여의도’ 공략 본격화
우선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광폭행보가 눈에 띕니다. 이 지사는 새해들어 여권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지사는 올해 들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내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단독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발표된 한국갤럽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12~14일)에선 이재명 지사 23%, 이낙연 대표 10%로 더블스코어 격차를 보이며 대세 굳이기에 들어간 모습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자타공인 ‘변방의 장수’였던 이 지사로서는 이제부터는 당내 입지 다지기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이 지사는 민주당의 근간인 호남과 현역 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모으기 위해 최근들어 여의도에 정성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지율을 앞세워 내부를 파고들어 대선후보에 안착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됩니다.
대표적으로 26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개최된 ‘경기도 기본주택’토론회에 여야 의원 2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토론회 자료집에 축사를 게재한 의원만도 43명입니다. 여권 지지율 1위 대선 유력주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사는 이자리에서 자신의 브랜드 ‘기본 시리즈’ 중 하나인 기본주택 정책을 소개했습니다. 이 지사는 “최소한의 주거권을 공공이 보장해서 국민이 불안하지 않게 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이라며 “기본주택은 문재인 대통령도 말한 ‘평생 주택’ 개념과 동일하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기본 주택과 함께 기본소득·기본대출은 이 지사의 3대 기본 시리즈입니다. 경기도민 1인당 10만원 지급 정책에 반영된 기본소득은 모든 소득이나 근로 여부와 상관없이 개별적이고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보편적 현금 소득을 지칭합니다. 기본대출은 국민 누구나 신용도와 상관없이 1~2%의 낮은 이자로 최대 800만~1,000만원을 대출받고 정부가 이를 보증하자는 내용으로 이 지사는 “경제적 기본권은 우리의 삶을 지키는 새로운 표준이 될 것”(올해 신년사)이라며 기본 시리즈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는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 의원도 참석했습니다. 이 지사의 ‘달라진 위상’이 드러난 자리인데 이 지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사 측근인 민주당 한 의원은 “민주당 의원 30명 가량을 확실한 이재명 지지 의원으로 구축할 것“이라며 “약한 당내 입지를 고려하면 30명이라는 숫자도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지사는 오는 29일엔 광주를 찾아 광주 지역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앞서 광주·전남 지역에서 이 지사의 지지조직이 공식 출범하기도 했습니다. 호남과 여의도에 대한 이 지사의 구애가 통할 경우 대세 형성은 무난할 전망입니다.
◇이낙연, ‘국민통합’ 불씨 살리며…4·7보선 ‘터닝포인트’ 총력
이 지사의 행보에 비해 이낙연 대표는 다소 수세에 몰려있습니다. 새해 벽두 뜬금없는 전직 대통령 ‘사면론’으로 지지율을 더욱 끌어내린 이 대표는 절치부심하는 모습입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수면아래로 내려갔지만 여·야 경선 과정에서 결국 사면론이 최대 쟁점으로 부각될 수 밖에 없고, 그럴 경우 ‘국민통합’의 의제가 적중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여기에 이 대표는 자신이 꺼내 든 이익공유제를 바탕으로 ‘사회·경제통합’ 의제까지 통합 기치를 강조하며 대선플랜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2월 임시국회에서 관련법 법제화을 목표로 하고 있어 3월 이후 영업제한 손실보상제와 사회연대기금까지 폭넓게 코로나19 위기에 빠진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비롯한 서민들의 ‘우군’으로 위치를 선점할 계획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4·7보궐선거까지 승리할 경우 이 대표의 대선가도는 분명 ‘터닝 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물론 선거패배의 책임은 크고 선거승리 시엔 당 대표 직에에서 물러난 뒤라 공을 온전히 평가받기도 어려운 처지입니다. 그럼에도 당 대표로서 당헌을 바꿔 서울과 부산시장 후보를 냈다는 점에서 이 대표의 승부처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서울과 부산의 선거 판세는 민주당에 유리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런 배경에서 최근 이 대표는 보궐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부산은 가덕도신공항을 고리로 집권여당의 지원을 쏟아붓겠다고 나선 상태입니다. 2월 임시국회에서 관련법 통과도 약속하고 있습니다. 부산 민심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도 고무적인 상황입니다. 서울의 경우 보수야권이 단일화에 실패할 경우 승산이 있다는 당 안팎의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180석 거대 여당을 만든 총선승리의 기억을 4·7보궐선거에서도 이어갈지 주목됩니다.
◇정세균, 시작도 전에 3자구도 진입…'친노·친문'지지 자신
새해들어 주목받는 인물에 정세균 총리도 빠지지 않습니다. 李-李 2강 구도에서 제외됐던 정 총리는 최근들어 3자구도안에 진입을 했습니다. 국무총리로서 대선 여론조사에선 제외해달라고 요청해 지지율 조사는 나오지 않지만 내부적으로 여권 제3후보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받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새해 영업제한 손실보상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이 지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도 각을 세우며 합리성을 띄우고 있습니다. 지난 8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자영업자들의 생활고를 묻는 말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모습도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정 총리 스타일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정 총리 측근그룹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현직 총리 신분으로 행보가 자유롭지 않은 정 총리를 대신해 측근들이 여의도와 외곽에서 대권 준비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모양새입니다. 4월 재보선 직후로 예상되는 정 총리의 여의도 복귀와 동시에 곧바로 대선캠프를 가동할 수 있도록 바닥 조직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정 총리 측근들은 정 총리가 ‘친노-친문’의 지지층을 끌어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당 내부적으로 이 지사는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폄훼한 ‘해경궁 김씨’ 프레임 극복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고, 이 대표 역시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구 민주당 원내대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던 과거 전력이 있습니다. 반면 정 총리는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거쳐, 문 대통령 곁을 지켰다는 점에서 친노-친문으로부터 지지를 끌어올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20대 총선 직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민주당 호남세력을 대거 이끌고 탈당하는 과정에서 힘의 공백상태에 빠진 호남을 지켰다는 점에서도 당내 입지가 상당하다는 평가입니다. 정 총리 최측근으로 꼽히는 민주당 한 의원은 “본격적인 대선 경쟁에 나서지 않았는데도 이재명-이낙연 3각구도로 올라와 있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라며 “민주당 현역 의원과 친문 호감도가 높은 정 총리가 4월 이후 대선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판세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자신했습니다.
◇4월 보선 이후 2022년 3월9일까지 11개월…판세는
민주당은 대선 전 180일 전까지 대선후보를 선출하도록 당헌에 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9월초에는 대선후보가 확정될 것입니다. ‘이낙연, 이재명, 정세균’ 3자 구도로 여당 경선은 마무리가 될까요. 그렇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이미 박용진 의원이 출사표를 던진 상태며, 박주민 의원도 대선 출마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여전히 3후보를 찾고 있는 친문그룹은 이광재 의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포함해 김경수 경남도지사까지 여러 변수를 고려하는 중입니다. 4·7보궐선거 이후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까지는 11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4·7보선 결과와 지지율 30% 고지에 먼저 오르는 후보, 그리고 제3후보의 등장 여부에 따라 판세는 여러번 요동치고 후보검증 과정에서 대세 역시 두 세번은 뒤집힐 수 있습니다. 이제 막 몸풀기에 들어간 잠룡들의 움직임에 ‘대선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