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의 ‘학교 폭력’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하는 가운데 정부가 스포츠인들이 과거에 받은 징계 내역을 조회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 구축에 나선다. 스포츠계 폭력의 주요 가해자였던 감독·코치 등 지도자뿐 아니라 선수들이 학창 시절에 저지른 학교 폭력까지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스포츠계 학폭 사태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근본 대책이 병행되지 않고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입을 모은다.
16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문체부는 스포츠윤리센터 산하에 징계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늦어도 연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징계 통합 관리 시스템에는 이미 운영 중인 대한체육회의 내부 징계 시스템뿐만 아니라 향후 대한장애인체육회와 교육부의 징계 시스템도 연계된다. 앞서 대한장애인체육회와 교육부는 자체 징계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확보했고 조만간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할 계획이다.
문체부는 내년도 예산 확보를 통해 배구·야구·축구 등 주요 프로스포츠계에서 일어나는 징계 내역까지 통합 관리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계에 만연한 폭력 문제를 근절하려면 체계적으로 징계 내역을 관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19일부터는 훈련장에 폐쇄회로(CC)TV 설치 등을 담은 최숙현법도 시행된다.
다만 통합 시스템이 만들어지더라도 과거 학폭 징계 내역까지 소급해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의 학폭 기록까지 반영할지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며 “기존에 징계 기록이 학교별로 관리돼왔기 때문에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배구계를 중심으로 학폭 논란이 확산하자 한국배구연맹은 지난 16일 새 규정을 만들어 향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학폭에 연루된 선수들을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규정은 신설 이후부터 적용되는 탓에 이재영·이다영 선수 등 이미 가해 사실이 알려진 선수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한국배구연맹의 사례처럼 통합 시스템이 도입되면 향후 드래프트 제한 등 각종 취업 불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학폭 문제를 줄이는 효과는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스포츠계의 구태의연한 인식과 해묵은 관행에 대한 수술 없이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장은 “징계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여러 대책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며 “경기에 지더라도 상대를 인정하는 스포츠 정신 대신 승리를 위해서는 폭력도 정당화하는 문화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폭력적인 훈련 방법 등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을 길러내는 과정 전반에 문제가 있다”며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두고 폭력을 행사하는 선수들만 걸러내겠다는 것은 사안을 단순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허진 기자 h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