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해로 월남한 북한 남성이 감시장비에 4차례 포착됐음에도 군이 이를 놓친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군이 수천억원을 들여 설치한 과학화 경계감시 장비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니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북한 남성이 강원 고성지역 해안으로 월남할 당시 여러 대의 폐쇄회로(CC)TV 중 한 대에 최초 포착됐다.
포착됐을 당시 부대 상황실 모니터에 팝업창이 뜨고 ‘알람’도 울렸다. 그러나 포착된 시간이 5초에 불과해 감시병이 해당 모니터를 쳐다봤을 땐 이미 사라진 뒤였다. 모니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상황실은 녹화된 해당 화면을 되돌려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은 육군 지상작전사령부와 합동으로 동북단 최전방 육군 22사단에 대해 진행한 현장 조사에서 이런 정황을 파악했고, 또 다른 포착 상황 및 대응 조치에 대해서도 조사를 했다.
북한 남성이 해안에 상륙했을 때 22사단 상황실에서는 정상적인 근무체계가 가동됐고, 감시 요원들도 졸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감시병들은 정상 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합참도 지난 17일 “북한 남성이 해안으로 올라온 이후 우리 군 감시장비에 몇 차례 포착되었으나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군 안팎에서는 현재 해안지역에 설치된 과학화 경계감시 장비로는 이번과 같은 사례 재발을 막을 수 없다면서 성능이 강화된 장비 교체 등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안 경계 감시카메라에 움직이는 물체가 포착되면 상황실 모니터에 팝업창 형태로 뜨고 알람도 울린다. 그러나 현재 설치된 장비는 사람을 비롯한 야생동물이 포착되거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씨에도 알람이 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난 부대에서도 감시병 1명이 9개의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는데 여기저기서 경보음이 울릴 때는 대처하기 역부족”이라며 “근본적으로 상황실 감시 병력이 부족한데 감시병만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국방부와 합참도 해당 부대에 설치된 장비의 이런 문제점과 감시 병력 부족 등의 고충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개선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군 일각에서는 인공지능(AI) 기반의 해안 경계 감시장비를 조기에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AI 기반 감시체계는 해안의 사각·취약지역을 골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카메라가 포착하는 움직이는 물체가 사람으로 인지 되면 알람을 울리는 기능 등이 포함돼 개발된다.
육군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2023년까지 해안 경계 AI 통합시스템을 구축하고, 2021년까지 주둔지 AI 감시장비를 보강할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AI 기반체계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해·강안 감시와 관련해 올해부터 2022년까지 ‘열상감시장비(TOD)-Ⅲ’ 112대를 전력화 할 방침이다. 이어 2023년부터 2024년까지 해안복합감시체계(57세트) 성능을 개량하고, 2025년부터 2029년까지 ‘해안감시레이더-Ⅱ’ 129대를 배치할 계획이다.
한편 북한 남성이 월남하면서 훼손한 배수로는 북한과 가깝고 유실된 지뢰가 있을 것으로 보여 평소 순찰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원형 관으로 만들어진 배수로 입구에는 ‘십(十)자’ 형태의 쇠철망으로 만든 차단막을 콘크리트에 나사못으로 박아놨는데 북한 남성은 이를 훼손하고 빠져나갔다.
배수로 주변에 잡목이 우거져 있어 그곳에 배수로가 있는지 아는 군인도 드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단막이 설치된 지 10년 이상 관리가 제대로 안 돼 부식돼 쉽게 훼손된 것으로 조사단은 파악했다.
/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