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이우환 “이건희 회장, 한국 미술품도 세계적 시야로 선별했다”

■이우환 화백, ‘현대문학’에 추모 글

“전통 지극히 중시했던 선친과 달라”

“세계 각지 한국 섹션, 이 회장 덕분”

“미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 표해”

고(故) 이건희(오른쪽부터) 삼성그룹 회장과 고(故) 이희호 여사,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1995년 5월 서울 중구 삼성플라자 빌딩에 문을 연 로댕갤러리에서 로댕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연합뉴스고(故) 이건희(오른쪽부터) 삼성그룹 회장과 고(故) 이희호 여사,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1995년 5월 서울 중구 삼성플라자 빌딩에 문을 연 로댕갤러리에서 로댕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연합뉴스




“영국 대영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프랑스 기메미술관 등 많은 주요 박물관·미술관의 한국 섹션 개설이나 확장은, 음으로 양으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의지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어느 한 존재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존재의 크기를 깨닫는 게 이 세상의 상례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우환(85) 화백이 ‘현대문학 3월호’에 지난해 10월 별세한 이 회장을 추모하는 글을 실었다. 이 화백은 ‘거인이 있었다’는 제목의 글에서 “거의 6년 여를 무반응의 생자(生者)로 살다가 끝내는 숨을 거뒀다”며 “그래도 거기에 있는 것 만으로도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고 그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이 화백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마음이 통하는 벗이었는데, 그의 죽음의 순간을 마주치지 못한 채 영원히 헤어지고 말았다”며 “한국을 방문해 검진 등으로 몇 번인가 병원을 찾았을 때 면회를 시도해보았지만 끝끝내 대면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애석하다”고 애통해 했다.

이 화백은 이 회장이 생전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떠올리면서 “내겐 사업가라기보다 어딘가 투철한 철인이나 광기를 품은 예술가로 생각됐다”고 회상했다. 이 회장은 그에게 “뛰어난 예술작품은 대할 때마다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이유가 뭐죠”라든가 “예술가에겐 비약하거나 섬광이 스칠 때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것이 계기가 되나요” 등의 날카로운 질문을 여러 차례 던졌다고 화백은 전했다.

젊은 시절 이 회장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완당 김정희의 글씨 액자를 보면서 함께 나눴던 대화도 소개했다. 글씨의 기백에 압도돼 “이 글씨에서 뭔가 느껴지지 않나요”라고 묻자 이 회장은 “으스스하고 섬찟한(섬뜩한) 바람이 붑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좋은 자극이라 생각해서”라며 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화백은 “미술관 같은 곳에나 어울리고 몸에 좋지 않으니 방에서 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권했고 이 회장은 곧 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고 이 화백은 밝혔다.

이우환 화백이우환 화백



이 화백은 2001년 삼성문화재단 지원으로 독일 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을 때, 이 회장 부부를 만났던 일도 떠올렸다. 이 화백이 “잘 오셨습니다”라고 인사하자 이 회장은 “미술은 제 영감의 원천입니다”라고 답했다고 기억했다.



이 회장의 고미술 애호와 깊은 식견에 대해서는 “선대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영향이 크겠지만, 어느샌가 아버지와는 다른 스케일과 감식안과 활용 방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이 화백은 회고했다. “이병철 회장은 한국의 전통을 지극히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에 비해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미술품이라 하더라도 작품의 존재감이나 완성도가 높은 것을 추구하며, 언제나 세계적인 시야로 작품을 선별했다”는 것이다. 이 화백은 “특히 한국의 고(古) 도자기 컬렉션을 향한 정열에는 상상을 초월한 에로스가 느껴진다”며 “이 회장이 갔어도 잘 지켜지기를 빈다”고 덧붙였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리움 전경. /사진제공=리움, ⓟKyung Sub Shin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리움 전경. /사진제공=리움, ⓟKyung Sub Shin


아울러 이 화백은 이 회장이 리움미술관을 세우고,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세계적인 컬렉션을 갖춘 데 대해 “미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만감을 담아 감사를 표한다”고 추모했다.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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