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스타 경제학자인 로런스 서머스의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이 화제에 올랐다. 서머스는 이 글에서 “부양책이 필요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쓴 돈에 육박하는 막대한 유동성이 가져올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미국 역대 민주당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집도해온 그의 메시지는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일축해온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엄중 경고였다. 그의 발언 한 달여 만에 인플레 공포는 전 세계 시장을 휘감고 있다.
서머스는 1954년 코네티컷주 유태인 집안에서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과 교수인 로버트 서머스(아버지)와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인 아니타 서머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머스는 어릴 적부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삼촌 폴 새뮤얼슨, 외삼촌 케네스 애로와 토론을 벌이며 자랐다. 어릴 적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그는 16세 때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에 조기 입학했고 27세에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28세에 하버드대 역사상 최연소 종신 교수에 임용된다.
1993년 재무부 국제 담당 차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1995년 부장관을 맡은 데 이어 1999년에는 로버트 루빈의 후임으로 재무장관에 오른다. 그는 이 기간 아시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공로를 세우고 장관 재임 때는 연방 정부의 예산을 흑자로 돌려놓았다. 2001년 하버드대 총장직에 오른 서머스는 설화로 위기를 맞는다. 그는 “여성의 과학 능력은 선천적으로 남성에 비해 떨어진다”는 여성 폄하 발언으로 2005년 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한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맡아 위기에 처한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를 회생시켰다. 티머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은 “서머스와의 5분 대화가 다른 사람과 한 시간 말하는 것보다 값지다”고 극찬했다.
세계적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이 최근 블룸버그 기고문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서머스의 (인플레이션 경고) 발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은 물론 한국도 인플레이션발 조기 긴축의 쇼크가 쓰나미 수준으로 몰려올 경우에 대비해 복합적이면서도 선제적인 방파제가 절실한 시점이다.
/김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