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의 교과서’로 불리는 ‘시민 케인’부터 마블 시리즈 ‘블랙 팬서’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자리에서 둘러볼 수 있는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이 올 가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문을 연다. 1927년 아카데미 창립 이래 90여 년 간 할리우드의 숙원이었던 박물관은 최신 시설과 방대한 자료로 영화 팬들의 갈증을 채워줄 전망이다. 특히 박물관에는 한국 영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봉준호, 이창동, 고 김기덕 감독 등과 관련된 콘텐츠가 포함돼 한국 영화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케 한다. 박물관은 9월 개관 예정이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물리적 접근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영화 팬들이 온라인을 통해 박물관을 둘러보고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가상 투어’와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선보일 계획이다.
미국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은 23일 가상 투어와 화상 간담회를 통해 개관 준비 중인 박물관 시설과 현황을 국내 언론에 공개했다. 로스앤젤레스 중심부에 2만7,870㎡ 규모로 자리한 박물관의 설계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렌조 피아노가 맡았다. 박물관은 두 개의 건물로 구성됐으며, 상설전·특별전을 위한 몰입형 갤러리, 데비 레이놀즈 복원 스튜디오, 1,000석 규모의 상영관과 교육 시설 등을 두루 갖췄다.
관객들은 여러 전시를 감상하는 동안 영화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영상과 사운드, 소품, 의상, 스크립트, 포스터, 의상 디자인 드로잉, 사진, 애니메이션 셀, 인형, 모형 등 다양한 자료들을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3층의 이스트 웨스트 뱅크 갤러리에서는 관객들이 할리우드 돌비 극장 무대에 올라 오스카상을 받는 순간을 체험할 수도 있다.
아카데미 박물관 디렉터이자 대표인 빌 크레이머는 “굉장히 어렵고 도전적인 시기에 박물관 개관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영화 제작에 있어 기념비적이고 교육적인 순간은 물론 비판적이고 불편한 사실까지 망라해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고 말했다.
박물관이 미국 영화 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박물관 측은 봉준호, 고 김기덕, 이창동 등 한국 감독들과 이소룡, 미야자키 하야오, 구로사와 아키라 등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아시아 영화인 뿐만 아니라 소피아 로렌, 우피 골드버그 등 유리천장을 깬 여성 영화인들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가상 투어에는 박물관 부의장을 맡고 있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부회장은 “영화에 대한 전 세계의 관점을 움직이고 높이며, 변화시킬 수 있는 박물관의 임원으로서 참석하게 돼 기쁘다”며 “박물관에서 영화의 마술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