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MZ "실적과실 투명하게 달라" 거센 요구…韓, 연공서열 무너진다

[송두리째 바뀌는 기업문화]

◆삼성전자 임금 7.5% 파격 인상

'호봉제 기반한 연봉 지급' 관행에

미국식 문화 익숙한 젊은층 불만

네임밸류만으로 '충성 요구' 불가

현대차도 "직원 눈높이 맞출 것"





올해 초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불거졌던 보수 ‘공정성’ 논란이 연봉협상 테이블까지 뒤흔들어놓으며 역대급 임금 인상률이라는 진기록으로 이어지고 있다. 26일 ‘국민 기업’으로 불리는 삼성전자(005930)가 올해 임금 인상률을 10년 내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평균 7.5%로 결정하면서 지난해 호실적을 기록했던 기업들 위주로 임금 인상 릴레이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에서는 과거의 수직적 기업 문화가 수평적 문화로 바뀌면서 직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근속 연수에 관계없이 일한 만큼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MZ세대의 공정성에 대한 요구, 핵심 인재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기업의 필요성 등이 맞물려 향후 기업들의 보수체계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날 삼성전자가 전격 발표한 올해 임금 인상률은 지난 18일 LG전자(066570)의 임금 인상 소식만큼이나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LG전자는 당시 평균 9%의 임금 인상률을 확정하며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률이라는 점을 밝혔다. 삼성전자 역시 올해 임금 인상률이 10년 내 최고 수준인데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지닌 상징성 탓에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 임직원 10만여 명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1억 2,700만 원이다. 대기업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지급하는 삼성전자가 이날 파격적인 임금 인상률을 발표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경영 성과를 기본급이나 성과급으로 분명히 반영해달라’는 직원들의 명확한 요구가 있었다는 점을 주된 배경으로 꼽는다. 호봉제를 기반으로 연봉을 지급해왔던 과거에는 형식적인 임금협상이 이뤄졌던 반면 지금은 직급성과에 따른 연봉이 결정되는 미국식 기업 문화가 퍼지면서 다수의 직원이 연봉에 대한 불만을 회사에 직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앞서 6%대 기본급 인상률을 사측에 요구했던 삼성전자 사원협의회도 사내 게시판 등에 ‘경쟁사인 LG전자는 타결된 인상률이 평균 9%대인데 우리는 왜 먼저 눈치를 보느냐’며 반발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협상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날 임금 인상률을 두고도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촛불을 들어야 한다”며 기본급 인상률이 4.5%에 그친 점 등에 대해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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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단 삼성전자만의 분위기가 아니다. 현대차(005380)그룹이 16일 말단 직원부터 정의선 회장까지 한자리에 모두 모여 그룹의 미래 계획과 조직 문화를 자유롭게 소통하기 위해 개최한 온라인 타운홀미팅에서는 기업 오너를 향한 강력한 의견 개진도 있었다. 당시 직원들은 정 회장에게 성과급 등 연봉을 어떤 식으로 지급해나갈 것인지 질문했고, 결국 정 회장은 “임직원들이 회사에 기여한 것에 비해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해 죄송하다”며 “성과급 지급 기준을 임직원들의 눈높이에 맞춰 더 정교하게 선진화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연초에 성과급 논란을 겪은 SK하이닉스(000660)도 한 사원이 이석희 사장에게 직접 성과급 기준을 알려달라고 보낸 메일을 시작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자진 연봉 반납이라는 나비효과를 경험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경영진에게 감히 보수를 올려달라는 얘기를 꺼낼 수 없었지만 최근 신세대 직장인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과감하게 표출한다”고 전했다.

또한 핵심 인력을 붙잡아둘 수 있는 최대 무기는 연봉뿐이라는 회사의 인식 변화도 임금 인상의 요인으로 거론된다. 이들 기업의 주축을 이루는 대리·과장 등 실무급 인력들은 Z세대 또는 밀레니얼 세대다. 이들은 ‘어느 회사를 다니느냐’보다 ‘어떤 일을 하느냐’를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그 결과 대기업들이 과거와 달리 네임밸류만으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이들에게 요구할 수 없게 됐다. 이달 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IM)에서 쿠팡으로 연봉을 2배 이상 높여 이직한 상무급 임원처럼 직무 연관성과 연봉만 충족되면 기업의 크기는 개의치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분위기도 뚜렷하게 감지된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자신이 일한 만큼 임금으로 보상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세대차이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공정과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 임 교수는 “특히 일부 정보기술(IT) 기업에서 개발자와 같은 핵심 인력이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을 요구하면서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은 직원과의 성과 공유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전자가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을 결정하면서 지난해 경영 성과를 연봉으로 인정받기 위해 임금을 올려달라는 직원들의 요구는 재계 전반으로 퍼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으로 인터넷은행 업계 1위인 카카오뱅크에 최근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IT 업계에 불고 있는 성과 보상 갈등이 도화선이 돼 노조가 탄생한 것이다.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이경운 기자 cloud@sedaily.com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이경운 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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