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인 미국 엔비디아가 최초로 데이터센터용 중앙처리장치(CPU) 출시 계획을 공개했다. 슈퍼컴퓨팅 고성능화를 통한 인공지능(AI) 선점 전략으로 CPU 시장을 장악한 인텔에 위협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온라인 회의로 열린 그래픽테크놀로지콘퍼런스(GTC)에서 데이터센터 서버용 CPU ‘그레이스’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정식 출시 시점은 오는 2023년 초이며 스위스 국립 슈퍼컴퓨팅센터와 미국 에너지부의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가 그레이스를 시범 사용하게 된다.
엔비디아 측은 AI 슈퍼컴퓨팅 등을 지원하도록 제작된 그레이스가 데이터센터에 최적화됐다고 밝혔다. 일반 CPU가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할 때 발생하는 데이터 병목 현상을 그레이스가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언 벅 엔비디아 부사장은 “현재 데이터 1조(兆) 개를 가진 프로그램을 학습시키는 데 한 달이 걸리지만 그레이스를 활용하면 3일이면 된다”고 장담했다.
특히 엔비디아는 그레이스를 엔비디아가 만든 GPU와 조합할 때 더 파괴력이 크다고 강조했다. 인텔이 만든 일반 CPU 대신 그레이스와 엔비디아 GPU를 함께 쓰면 데이터 처리 속도가 10배나 빨라진다는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그레이스는 현대 데이터센터의 기본 구성 요소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도체 업계는 CPU 진출로 엔비디아가 X86 모델을 필두로 세계 CPU 점유율 90%를 지키고 있는 인텔을 추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최근의 프로세서 시장은 CPU와 GPU가 통합되는 추세다. 다중 연산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AI에 특화된 GPU에 강한 엔비디아로서는 CPU 설계까지 가미해 원스톱 솔루션으로 프로세서 시장에서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 실제 대만계 미국인인 젠슨 황이 1993년에 설립한 엔비디아는 게임용 그래픽카드 제조사로 출발해 현재는 AI·빅데이터 등 고성능 반도체 칩 제조사로 성장했다. 엔비디아의 전체 매출에서 데이터센터용 칩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6년 7%가량에서 지난해 40%까지 5배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실제 이날 스웨덴 자동차 회사 볼보는 엔비디아 칩 ‘드라이브 오린(Orin)’을 스포츠유틸리티차(SUV) X90 등 자사 모델에 탑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AI를 통한 자율주행차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엔비디아가 CPU까지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듯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5.6% 오른 반면 인텔은 4% 이상 하락했다. 한스 모세스만 로젠블라트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는 인텔·AMD 등 CPU 시장의 강력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구애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인텔·AMD 등과 직접 경쟁하기보다 AI 기술 고도화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엔비디아는 이날 그레이스를 공개하며 “AI 소프트웨어 고도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엔비디아는 암호화폐 채굴 열풍의 영향으로 이날 올 1분기 매출이 당초 전망치인 53억 달러(약 5조 9,700억 원)를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암호화폐 채굴 전용 칩과 그래픽카드 등을 출시하고 있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