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 공동 대응했다면 상황이 지금보다는 더 좋았을 것입니다. 한일 상호 백신 여권을 도입하고 트래블 버블(비격리 여행 권역) 협약 체결을 추진해야 합니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일 양국이 대결보다는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민간 영역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반일·혐한 감정을 누르고 공동의 이익을 찾아 미래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는 취지다. ‘복합 골절 상태(이원덕 국민대 교수)’라는 최악의 한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개최한 ‘2021 새로운 한일 관계를 위한 양국 협력 방안’ 세미나에서는 한일 간 긴밀한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제기됐다. 주제 발표를 맡은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글로벌 경제 위기가 상시화되는 추세”라며 한일 양국이 상시화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 분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 실장은 “3~5년 주기로 글로벌 경제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며 “문제는 한일 모두 글로벌 경제 위기에 취약하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주 실장은 경제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논의가 중단된 통화 스와프를 추진하고 한중일·아세안(ASEAN) 10개국 간 통화 스와프 체계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M)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주 실장은 “적절한 시기에 한일 상호 백신 여권을 도입하고 출입국을 자유롭게 하는 트레블 버블 협약 체결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생산 가능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인력 활용 극대화 방안 마련과 글로벌 밸류체인(GVC) 재편 과정에서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탄소 중립에 따른 경제적 충격 최소화를 위한 탄소 저감 기술 교류 활성화도 제안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한 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은 “한일 관계 악화가 구조적 차원으로 확산됐다”며 “지난 2012년 이전으로 한일 관계가 원상 회복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양국 정부가 강제 동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국민 간 신뢰 회복이 의문시된다”고 우려했다. 손 원장은 “역사 문제에 대한 국민 인식과 한일 간 힘의 균형 등 양국을 둘러싼 환경이 변해 과거와는 다른 한일 관계 재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양국 간 이슈보다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초강대국 사이에서 중견 국가로서 안보, 생산 및 기술, 디지털 무역 등의 분야에서 협력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패널 토론에 참여한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이 중국과 정치·안보적으로 갈등의 소지가 있음에도 상호 보완적 경제 관계를 발전시켜온 것처럼 한일 경제 관계에서도 정치적 갈등과 분리해 한국의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반도체, 배터리, 수소 개발, 탄소 저감 기술 등의 분야에서 한일 양국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