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최근 전세계 암호화폐 개수가 급증한 것이 대표적인 거품의 증거라고 지적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디지털 담당 임원은 “암호화폐가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공개된 소스로 만들기 때문에 디지털 분야 전문가는 마음만 먹으면 몇 분 만에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이더리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돌아가는 암호화폐 코드를 다운 받아 가격을 책정해 자신의 이름으로 발행을 할 수 있는 식이다.
하지만 독창적이고 기술적으로 유망한 암호화폐는 그만큼 만들기 어렵고 탄생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린다. 최근 두 달 사이 1,100개가 넘는 암호화폐가 생겨난 것은 결국 기존의 것을 복사해서 만들거나 장난삼아 만드는 암호화폐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짜 명품을 만드는 것은 디자인을 고안할 필요도 없고 있는 것을 그대로 베껴서 하면 된다”며 “암호화폐도 다른 것을 베낀 것은 만들기가 쉽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가령 양복점에서 맞춤 양복을 만드는 것도 치수를 재고 색상과 원단을 고르듯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며 “마찬가지로 상상력이 풍부한 암호화폐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전했다.
실제 닷컴버블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회사 이름에 ‘닷컴’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주가가 폭등했다. 특별한 정보기술(IT)적 강점이 없음에도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한다고 선전을 하는 영세기업도 늘어났다. 결국 거품이 꺼지며 이들 기업에 투자했던 사람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현재도 암호화폐를 만들어 상장하면 개발자는 특별한 기술적 우수성이 없어도 암호화폐 투자 열풍을 타고 일확천금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앞다퉈 암호화폐를 찍어내고 있다. 투자자 역시 그렇게 탄생한 잡코인들이 하루아침에 몇 배씩 급등을 하자 맹목적으로 암호화폐가 유망하다는 점만 인지하고 투자를 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가 유망한 산업이 될 수 있다고 보면서도 거품과 무분별한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 투자 비중이 전세계 흐름에 비해 높은 상황이다. 일례로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지난 22일 하루 동안 비트코인 거래액 비중은 4~5%에 머물러 있는 반면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에서는 21%였다. 한국에서는 비트코인을 제외한 알트코인이 전체 거래액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알트코인에 대한 인기가 높다. 변동성이 커 빠른 시간 안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점에 투자자들이 현혹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다양한 암호화폐 업권법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본격적인 논의도 시작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투자자보호 장치도 없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암호화폐가 상장될 때 백서를 발행한다고 하지만 허위정보를 게재해도 처벌할 규정이 없고 리딩방, 지라시(사설 정보지) 유포로 시세를 조작해도 역시 처벌할 근거 법이 없는 실정이다. 거래소 직원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수익을 보고, 이를 모르는 투자자가 손실을 봐도 역시 구제할 방법이 없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1만여개의 암호화폐 중 실패하는 암호화폐가 다수일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건전한 암호화폐를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도 “암호화폐가 모두 거품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우수한 코인이 있다. 옥석을 잘 가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행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코인 가격이 꾸준히 오르거나 일정 가격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 좋고 코인의 미래에 대해 기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좋은 커뮤니티를 형성한 것이 좋은 코인”이라고 강조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