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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랑종' 견디는 자만이 엔딩 크레딧을 볼 수 있다

영화 '랑종'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영화 '랑종'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공포가 엄습한다. ‘기존 호러 영화와의 차별화, 새로운 시도’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차마 눈뜨고 모든 장면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잔혹하고 기괴하다. 절정으로만 치닫는 131분을 견딜 수 있는 자만이 관람할 것을 제안한다.



‘랑종’은 태국 산골마을,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을 그린 작품이다. 태국어로 무당이라는 뜻인 ‘랑종’은 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 님(싸와니 우툼마)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랑종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님의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직감하고,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밀착 취재한다. 그러면서 밍의 가족에게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영화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으로, 그는 자신의 연출 스타일이 굳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태국 호러 영화계의 새 지평을 연 ‘셔터’의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에게 감독을 맡겨 더욱 강력한 호러 영화를 만들었다.

연출 스타일은 다르지만 촘촘한 나홍진의 세계관이 작품을 지배한다.“‘곡성’ 이후 일광(황정민)이라는 캐릭터의 이야기, 전사를 그려보고 싶었다”는 그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캐릭터로, 전혀 새롭게 그 전사를 만들기 위해 한국을 벗어났다. 그 결과, 반종 감독이 태국인이었기에 새로운 배경은 태국으로 낙점됐다. 한국과 다른 정서를 가진 곳이기에 더 표현의 폭이 넓어졌고, 그만큼 더 기괴스러워졌다.

영화 '랑종'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영화 '랑종'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이국적인 정서가 주는 낯섦과 동시에 익숙함이 있다는 부분도 한편으로는 공포로 다가온다. 작품의 중심 소재인 신내림과 그것을 거부한 이들에게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대물림은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다. 나 감독에게 원안을 받고 약 2년간 태국의 무속에 대해 취재했다는 반종 감독은 “한국과 태국의 샤머니즘이 비슷해서 정말 놀라웠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태국이 아닌 어딘가에서 또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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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은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리얼화에 집중했다. 영화 속 촬영팀이 님과 밍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핸드 헬드 촬영 기법과 CCTV 화면으로 그려내며 극강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어느 정보도 없이 이 작품을 접했다면 실제인지 가상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촬영자의 입장에서 인물들을 관찰하다가도 극에 유입돼 인물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마치 내가 촬영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핸드 헬드 기법으로 인해 카메라가 급격하게 흔들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멀미가 나기도 한다. 공포가 엄습해 올수록 그곳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촬영자가 원망스러울 정도다.

이처럼 실제의 날것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은 반종 감독을 적임자라고 생각한 나 감독의 혜안 덕분이다. 반종 감독은 생생한 현장감을 포착하기 위해 가이드라인만 가지고 촬영을 했다고. 현장에서 즉흥으로 대본에 변화를 주거나, 배우에게 상황만 주고 직접 대사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생동감을 전하는 촬영 감독에게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귀띔하지 않아 솔직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

영화 '랑종'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영화 '랑종'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랑종’이 주는 공포감은 단순히 귀신이 주는 공포와는 차원이 다르다.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토속 신앙이 깊게 뿌리내린 마을, 이 기이한 세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는,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공포다. 아무리 무서운 호러 영화라도 공포에 질린 관객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구간이 있기 마련이지만 ‘랑종’은 매몰차다. 긴 러닝타임은 두려움 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모든 작품이 호불호가 나뉠 수 있으나, ‘랑종’은 그 어느 쪽에도 여지를 주지 않고 한 방향으로만 밀고 나간다.

신내림을 받지 않아 점점 변해가는 밍의 모습은 자극적인 것으로 똘똘 뭉쳤다. 개인적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부분도 몇몇 있다. 근친상간, 존속살해, 식인, 동물학대 등은 불쾌감을 남긴다. 나 감독이 반종 감독의 고수위를 몇 차례 말렸다고 했을 정도. 반종 감독은 “잔혹함이나 선정적인 장면을 팔아서 영화를 흥행시키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내용과 관련 없는 선정적인 장면을 넣지 않았고, 수위 또한 이 스토리에 꼭 필요한 것을 구사했다”고 했지만 관객의 판단은 제각각일 듯하다. 14일 개봉.

영화 '랑종'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영화 '랑종'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추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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