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영화

[리뷰] '인질' 이런 양장피같은 영화를 봤나





코미디인 줄 알았다. 예고편에서 “드루와 드루와 한번만 해주시면 안돼요?”라고 요구하는 인질범의 잔상이 컸던 걸까. 액션 스릴러를 표방했다지만, 곳곳에 유머를 섞어놓은 소동극이 되지 않을까 추측했다. 그리고 초반 5분 동안은 그 추측이 맞는 듯 했다. 그런데 웬걸, 납치된 황정민이 눈을 뜬 순간부터 영화는 말한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톱스타 황정민이 납치됐다. 돈을 노렸으나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얼떨결에 붙잡힌 바람에 그가 납치됐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빠져나갈 길은 없고, 눈앞에는 얼마 전 납치된 카페 여종업원이 묶여있다. 그가 인질범에게 약속한 돈은 5억. 이 돈을 주고 나면 순순히 풀어줄까? 탈출할 방법은 없을까? 그의 머리는 대본을 외울 때보다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시사회에 참석했다가 저녁에 술 한잔 하고, 대리운전을 맡겨 집 앞 슈퍼에 차를 주차시키고, 슈퍼에서 물 한병 사다 약을 먹고, 내일 차를 찾으러 온다며 키를 맡기고. 자신을 알아본 동네 청년들에게 “지금 술을 마셨으니 사진은 못 찍어주겠다”고 했다가 언쟁이 벌어지고. 사실 이게 흔하다면 흔한 일이라 관객은 영화 속 캐릭터를 황정민 자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럼 미끼를 콱 물어버린거다.




황정민이 황정민을 연기하기에 조금이라도 흐름이 끊기면 위험하다. ‘황정민이 연기를 한다’고 느끼는 순간 모든 영화적 장치는 깨진다. 연기하지 않되 연기하는, 참 어려운 작업을 황정민은 완벽하게 이행한다. 모든 상황은 짜여진 것이 아닌 실제상황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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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황정민과 스크린에 익숙지 않은 배우들의 호흡이야말로 영화의 핵심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배우들은 촬영 전 사무실을 구해 마치 연극 연습하듯 세트를 만들어 3주가량 합을 맞췄다. 최근 개봉한 ‘어른들은 몰라요’가 2개월간의 워크샵을 통해 연기는 처음이었던 EXID 하니(안희연)의 감정을 끌어낸 것처럼, 황정민과 인질범들의 호흡은 죽이 착착 맞는다.

인질범들의 면면은 만만치 않다. 온갖 수를 예측하고 자신의 계산대로 주도권을 가져가는 리더 최기완(김재범), 어디로 튈지 모르는 2인자 염동훈(류경수), 열렬한 팬이지만 리더를 배신할 수 없는 용태(정재원), 리더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거구 고영록(이규원), 사제 총과 폭탄 제조를 담당하며 표정 변화조차 없는 유일한 여성 멤버 샛별(이호정)까지. 빠져나갈 구멍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른다.

최기완을 연기한 김재범은 공연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익숙한 얼굴이지만, 스크린에서는 생소하다. 냉혈한 같다가도 순간적으로 슥 감정을 끌어올리거나 교묘하게 수사를 훼방 놓는 장면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와일드카드’의 이동규나 ‘범죄도시’의 진선규처럼 캐릭터의 입지를 확실하게 구축한다.

‘이태원 클라쓰’의 조폭 출신 홀직원으로 얼굴을 알린 류경수의 매운맛 폭력, 강한 힘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이규원, “드루와 드루와 한번만 해주시면 안돼요?”의 주인공이자 소소한 웃음을 담당한 정재원, 무표정해 더 무서운 이호정까지. 한명씩 치고 빠지는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쉬어갈 틈이 없다.



인질극을 소재로 한 만큼 큰 틀에서 클리셰(익숙한 설정)를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이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며 결말로 향하기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만든다. 어찌 어찌 쓴 수가 인질범들이 미리 짜놓은 덫이거나, ‘살았다’ 하는 안도가 1분도 안돼 ‘아유’ 하는 한숨으로 뒤바뀌거나. 작고 신선한 에피소드를 잘 이어붙여 이야기는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다. 재료 하나하나 맛보면 맹탕이지만 다 섞어놓으면 코 찡하게 소주를 부르는 양장피처럼, 이집 진짜 맛집이다.

황정민은 5일 언론시사회에서 작품을 두고 “하모니와 조화로움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영화를 보며 행복했다. 영화에 황정민만 보이는게 아니라 너무너무 연기 잘하는 사람들이 다 보였다”고 만족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라 배우들의 하모니와 조화로움, 그리고 신선한 전개가 꽤 오랫동안 ‘인질’을 수작으로 손꼽게 만들지 않을까 예측한다. 18일 개봉.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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