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내 커피는 아직 60점짜리… 공부 더 해야죠"

현업 유일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보헤미안박이추커피 대표

88년 혜화동 개업 이후 33년 외길

공부차 내려온 강릉 '커피 성지'돼

맛 결정하는 건 재료가 아닌 사람

요즘은 카페 너무 쉽게 열고 닫아

못다 한 과제 위해 4년 후 울진行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커피보헤미안 대표가 강원도 강릉 사천 보헤미안박이추커피 본점에서 드립 커피를 추출하고 있다. 물을 내리고 있는 주전자는 그와 33년간을 함께한 친구다.'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커피보헤미안 대표가 강원도 강릉 사천 보헤미안박이추커피 본점에서 드립 커피를 추출하고 있다. 물을 내리고 있는 주전자는 그와 33년간을 함께한 친구다.




‘쿵’ ‘쿵’ ‘쿵’. 커피 추출 후 주전자를 내려놓는 소리가 요란하다. 마치 망치질을 하는 듯하다. 무슨 특별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33년이나 같이 지낸 2,500㏄ 주전자를 들다보니 손목에 무리가 가는 탓이다. 그래도 커피를 내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커피를 직접 추출하는 것은 손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커피,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것 그 자체 때문입니다.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갖고 커피를 내립니다.”



‘1세대 바리스타’ ‘커피의 살아 있는 전설’. 커피의 달인으로 통하는 ‘1서 3박(서정달·박원준·박상홍·박이추)’ 중 유일하게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이추(71) 보헤미안박이추커피 대표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별칭이다. 일본 규슈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 1988년 서울 혜화동에서 처음 커피점을 시작한 후 33년간 줄곧 커피와 인생을 같이했다. 1997년에는 귀화도 했다. 강원도로 내려온 것은 2000년. 오대산 부근 진고개와 강릉 경포대를 거쳐 2004년부터 지금의 강릉 사천에 자리를 잡았다. 강릉이 커피의 성지로 떠오른 것도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천 보헤미안박이추커피 본점을 처음 가본 사람들은 명성에 비해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외관에 의아해한다. 박 대표와의 사무실 만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다.’ 제가 원래 여기에 내려온 것은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조용히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손님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습니다.”



박 대표가 생각하는 맛있는 커피를 위한 조건은 사람과 커피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잘 만든 커피는 약이다. 마시면 신체를 좋게 하는 효능이 나타나야 한다. 효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만들거나 마시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이는 커피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얘기하지만 그것을 잘못된 생각”이라며 “커피 맛은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몸과 마음·커피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맛있는 커피가 나올 수 있다. 언제나 책을 읽고 찾아다니며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피는 죄가 없고 단지 만들고 마시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맛없는 커피’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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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커피보헤미안 대표가 강원도 강릉 사천 보헤미안박이추커피 본점에서 커피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커피보헤미안 대표가 강원도 강릉 사천 보헤미안박이추커피 본점에서 커피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때문일까. 박 대표는 커피에 대한 자신의 점수를 “100점 만점에 60점”이라고 말한다. 수년 전 80점이라고 평가한 것보다 더 내려갔다. 자신에게 커피를 배워 근처에서 카페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도 ‘공부를 하지 않는다’며 박한 점수를 준다. “커피가 이렇게 어려운 줄 미처 몰랐습니다. 커피를 잘 만든다고 스스로 자평하는 것은 ‘오만’일 뿐입니다. 단지 잘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맛있는 커피를 위해 끝까지 지키는 원칙이 있다. 드립 커피만은 본인이 직접 만든다. 하루에 내리는 양은 200~300잔 정도. 인터뷰 동안에는 열 번 이상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또 하나 있다. “커피를 추출할 때는 주전자에 담긴 물의 절반 정도만 사용합니다. 주전자에 물이 어느 정도 담겨 있어야 물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 대표는 커피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접근하는 최근의 세태가 아쉽기만 하다. 강연을 할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카페 하지 말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하기도 한다. 그는 “카페를 하려면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창의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요즘은 그런 생각 없이 너무 쉽게 문을 열고 닫는다”며 “경제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맛있는 커피도, 삶을 바꾸는 것도 어렵다”고 조언했다.

강릉을 커피 성지로 만든 박 대표지만 얼마 후면 여기서 커피를 내리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오는 2025년 경북 울진으로 자리를 옮기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현재보다 더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커피에 관해 해결하지 못한 것들을 완수하기 위해 남은 시간을 쓰고 싶습니다.” 혼잣말처럼 말하는 그는 진정한 ‘바리스타’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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