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이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호랑이가 액을 물리고 복을 부른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을 비롯해 민가에서는 대문에 호랑이 그림을 붙였다. 민화·전설·구전설화에 호랑이가 자주 등장하는 것에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명나라와 청나라에서는 호랑이 이야기로 가득한 조선을 ‘호담국(虎談國)’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그만큼 호랑이와 관련된 다양한 명소들이 여행지로 주목 받아왔다.
오는 2022년 임인년(壬寅年), 호랑이의 해를 맞아 충북 영동에 다녀왔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동은 대표적인 국내 호랑이 여행지다. 호랑이를 품은 사찰 반야사와 머리에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각호산이 있고 집에서 호랑이를 애완동물처럼 기른 한 효자의 이야기 호총실기(虎塚實記)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이번 여행은 이미 수십 년 전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전설 속 호랑이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호랑이 무덤 있는 효자마을…400년 넘게 호랑이 제사도
첫 번째로 만나볼 이야기는 호랑이도 감복한 효자 오촌(梧村) 박응훈 선생에 대한 이야기다. 조선 선조 때 실존 인물인 오촌은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약을 구하러 한밤중에 100리가 넘는 길을 나섰다. 백화산을 넘어 경북 상주쯤 다다랐을 때 갑자기 집채만 한 호랑이가 그의 앞에 나타났고 호랑이 등에 올라 탄 오촌은 무사히 약을 지어 집에 도착했다. 이후에도 오촌은 멀리 약을 지으러 다닐 때마다 항상 호랑이와 동행했다고 한다. 오촌의 효심으로 그의 아버지는 92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오촌은 훗날 호랑이가 사냥꾼에 잡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북 무주 현령을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들은 현령은 그의 효심에 감복해 관군까지 동원해 호랑이 사체를 그의 집까지 옮겨줬다. 오촌은 그의 아버지 산소 맞은편 선산에 호랑이를 묻어줬다. 실제 황간면 소계리 상주골에는 호랑이 무덤인 호총(虎塚)이 남아 있다. 호총에 대한 내력을 적은 비석 뒤 가파른 산길을 5분가량 올라가면 호총을 만나볼 수 있다. 호총은 봉분에 비석까지 사람의 묘와 동일한 형태다.
전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충주 박씨 집안의 야사 호총실기와 조선 시대 황간현의 역사를 기록한 황계지(黃溪誌)에는 오촌과 호랑이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전해진다. 소문은 당시 조선 왕실까지 전해졌고 선조는 1601년 ‘효자오촌박응훈지려’라는 편액을 하사했다. 지금도 오촌의 후손들이 400년 넘게 호랑이 무덤을 정성스럽게 돌보며 매년 오촌의 아버지 기일에 맞춰 호랑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오촌의 아버지 묘는 호총과 정면으로 마주한 호점산 꼭대기다. 호랑이가 점지해줬다는 묏자리 호점산소는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으로 꼽힌다. 실제 그의 후손들은 대대손손 번성했고 10대에 걸쳐 큰 부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호총이 자리한 소계리는 이장을 포함해 오촌의 자손들이 400년 넘게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호총 앞으로는 ‘노천 효자길 탐방로(3.65㎞)’ 공사가 한창이다. 아직 미완성인 이 길은 오촌이 수백 년 전 아버지 약을 구하러 호랑이 등을 타고 넘어 다니던 산길이다.
성주골에서 출발해 탐방로를 따라가다 보면 반대골·장자나무골·거저나무골·사발골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아득한 산촌 마을을 지난다. 하나같이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풍경이 펼쳐질 것만 같은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아직 정비가 덜 됐지만 지난 수백 년간 사람이 다니던 길을 연장하는 차원이라 걷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탐방로 종점은 충주 박 씨의 재실 봉유재(奉裕齋)다. 재실 앞으로는 대형 호랑이 조형물이 엎드린 채 마을을 지키고 있고 400년 전 왕이 하사한 ‘효자오촌박응훈지려’ 편액이 걸린 효자문도 그대로다.
‘범 내려온다’…호랑이 품은 사찰 반야사
두 번째 호랑이는 백화산 자락 천년고찰 반야사에 있다. 반야사 요새채 뒤편으로 너덜겅(돌로 뒤덮인 비탈)이 병풍처럼 펼쳐지는데 그 모습이 마치 호랑이와 같은 형상이다. 경내에서 백화산을 올려다보면 꼬리를 바짝 치켜세운 호랑이가 웅크린 채 당장이라도 경내로 뛰어내릴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호랑이다.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지만 자연이 만든 작품이다. 절묘하게 호랑이 배 높이에 맞춰 지어진 요사채도 신기하기만 하다.
호랑이는 반야사 창건 설화와도 얽혀 있다. 반야사 중창을 명한 세조가 대웅전에 참배하자 문수동자가 나타나 절 뒤쪽에 있는 개천에서 목욕을 권했다. 세조가 목욕을 시작하자 문수동자는 부처의 자비가 따를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 때 문수동자가 타고 온 사자가 백화산에 남아 반야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사자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동물로 상징되지만 우리에게는 호랑이가 더 익숙하다.
반야사를 휘감아 흐르는 석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영천이다. 세조가 목욕을 한 뒤 피부병을 고쳤다는 영천은 거센 물살이 잦아드는 물웅덩이다. 그 뒤로는 까마득한 벼랑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 문수전이 올려다 보인다. 문수전이 자리한 만경대는 한평 남짓한 공간으로 주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영천에서 10분만 올라가면 닿는 거리지만 밑에서 올려다보는 것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천지 차이다. 백화산과 주변을 굽이쳐 흐르는 석천 물길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백화산에서 발원한 석천 물길을 따라 가면 ‘월류봉 둘레길’이 이어진다. 반야사에서 월류봉까지 연결된 총 8.4㎞ 길이의 둘레길은 석천 물길 바로 옆 암벽에 매달아 놓은 테크길이다. 원래 반야사는 도착지이고 출발지는 반대편 월류정이지만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무관하다. 반야사에서 출발한다면 ‘풍경소리길’ ‘산새소리길’ ‘여울소리길’ 3개 구간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는데 길 이름이 구간마다의 매력을 잘 표현하고 있다. 굳이 공통점을 꼽으라면 전 구간이 평지에 가깝고 걷는 내내 물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호젓하다는 점이다.
둘레길 전 구간을 다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 반야사를 빠져나와 두 번째 구간인 ‘산새소리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원하는 구간만 나눠 걷는 것도 방법이다.
월류봉 둘레길의 반대편은 정자 월류정이다. 월류정은 ‘달이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절경지 한천팔경 중 일경으로 꼽힌다. 월류봉은 초강천과 석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수려한 6개의 암봉 앞으로 초강천이 굽이쳐 흐르고 그 한가운데 월류정이 절묘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수면에 비친 봉우리와 물이 돌아나가는 곳에 형성된 모래사장이 마치 병풍 속 그림을 펼쳐 놓은 것 같다.
월류봉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보름달이 뜨는 동짓날(12월 22일) 전후다. 눈까지 내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풍경을 선사한다. 둘레길을 걷지 않더라도 월류정은 반야사와 함께 빼놓지 말고 들러야 할 영동의 대표 볼거리다. 바로 옆으로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한동안 머물며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는 한천정사와 그를 기리는 유허비가 있다.
‘뿔 달린 호랑이산’은 일출 명소
각호산(角虎山, 해발 1,176m)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추풍령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주로 여름에 물한계곡을 들러가는 등산 코스로만 알려져 있지만 한겨울 눈 덮인 설경도 일품이다. 특히 삼도봉에서 각호산까지 이어지는 산행코스는 장쾌하고 시원한 능선, 빽빽한 원시림으로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다.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정상에서는 민주지산과 덕유산 향적봉, 설천봉 등 설산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영동에 자리한 수많은 명산 가운데 굳이 각호산을 새해 여행지로 꼽은 것은 숨겨진 일출 명소이기 때문이다. 들머리는 해발 800m 도마령 주차장이다. 각호산 정상까지는 1시간가량.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줄곧 험준하고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올라야 한다. 각호산 정상은 두 개의 암봉으로 이뤄져 있는데, 바로 전설 속 호랑이 뿔이다. 등산객들은 각호산을 지나 민주지산과 물한계곡으로 내려오는 5시간 코스로 산행에 나서지만 일출이 목적이라면 여기까지가 적당하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백패킹도 도전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