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청년 미래 좀먹는 ‘꼰대 정치’

◆정민정 논설위원

2030 겨냥한 선심공약 쏟아내는건

청년미래 저당잡혀 표심 얻겠다는것

노동·연금 개혁 없이 국민통합 요원

유권자 선택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몇 년 전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오늘의 단어’로 ‘꼰대(Kkondae)’를 선정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BBC는 “자신은 옳고 남은 틀리다고 주장하는 나이 든 사람”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코노미스트도 꼰대를 “젊은이들의 복종을 기대하고 실수는 인정하지 않으며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보복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요즘 유력 대선 후보들의 행태를 보면 ‘꼰대’의 정의에 꼭 들어맞는다. 자신만이 청년을 위한 정치를 펼칠 적임자라며 온갖 감언이설로 현혹하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청년 미래를 담보로 권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꼰대 정치’에 불과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연 100만 원의 청년기본소득과 국민내일배움카드의 청년지원금 2배 확대, 연 1000만 원 한도의 저금리 청년기본대출 등을 약속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저소득층 청년들을 대상으로 연 400만 원의 청년도약보장금과 연 250만 원 한도의 청년도약계좌 지원을 공약했다. 이미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실업수당과 지원금이 연간 1700만 원을 넘는데도 쌈짓돈 쓰듯 현금 살포에 여념이 없다. 여기에다 병사 월급 200만 원으로 인상, 가상자산 비과세 한도 상향 등 2030세대를 겨냥한 선심 공약은 끝도 없이 쏟아진다. 덕분에 국가 부채 역시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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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없이 과거를 제물로 삼는 구태 정치에다 내일을 헐값에 넘겨 오늘의 표를 사는 데 써버리는 포퓰리즘 탓에 정치 혐오는 임계치로 치닫고 있다. 가장 큰 비극은 미래를 저당 잡힌 대가를 애먼 청년 세대가 치러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거대 양당이 청년층 구애에 매달리는 것은 2030세대에 대선 승패가 달려 있다고 판단해서다. 지난 1년간 치른 선거에서 2030세대의 영향력을 확인할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 오세훈의 당선을 밀었던 이들도,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 때 ‘이준석 돌풍’을 일으킨 주역도 바로 2030세대다. 특히 문재인 정권의 국정 운영 실패와 ‘조국 사태’가 촉발한 공정성 논란 등은 청년층의 ‘탈(脫)이념’을 촉발하며 실용주의 경향을 강화했다.

하지만 꼰대들의 청년 유권자 분석과 선거 전략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우리나라 재정 여건을 감안할 때 퍼주기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평생 세금으로 그 비용을 메워야 하는 청년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청년들이 원하는 건 ‘제대로 된 일자리’이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다양하고 공정한 기회’다. 노동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하지만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대로 둔 채 각종 규제로 기업과 시장을 옭아맨 탓에 지난 4년간 풀타임 일자리는 185만 개나 사라졌다. 연금 개혁 역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현재 예상대로라면 2055년 기금이 바닥나고 현재 32세인 1990년생부터는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저출산·고령화는 필연적으로 연금 고갈을 가져온다. 연금 구조를 손보지 않고는 복지국가의 지속 가능성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청년 세대에 꿈을 심어주고 미래 부담을 덜어주려면 연 100만 원 기본소득을 외치는 대신 우리 사회 곳곳에 공고하게 구축된 586세대의 기득권 혁파를 약속하는 게 먼저다. 더구나 노동·연금 개혁은 세대 갈등의 근본 원인이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국민 통합도 요원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42년 전 사형선고를 받은 뒤 감옥에서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정보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집권한 뒤 대한민국을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의 정보화 강국으로 만들었던 저력이다. 정치 지도자의 미래 지향적 비전과 철학은 나라를 풍요롭게 만든다. 반면 철학도, 비전도, 역사적 사명감도 없는 지도자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길로 이끌기 마련이다. 34일 앞으로 다가온 20대 대선의 무게를, 이 시대를 책임진 유권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야 하는 이유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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