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별 같던 아이들 눈빛… 안 오면 후회할 것 같았죠”

23년 째 가덕도 소양 보육원서 바이올린 가르친 백주연 씨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 모습 보며

계속 안 오면 후회할 것 같아 시작

'왕복 6시간' 고생길 무릅쓰고

코로나 전까지 매주 한번씩 찾아

"음악엔 치유 효과 있다 확신해"

국민추천포상 국무총리 표창도

백주연(왼쪽) 씨가 가덕도 소양보육원생들과 바이올린 연습 중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백주연 씨백주연(왼쪽) 씨가 가덕도 소양보육원생들과 바이올린 연습 중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백주연 씨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 눈이 별처럼 반짝거렸어요. 어둡고 우울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지더군요. 계속 오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경남 가덕도 소양보육원 어린이들에게 23년간 무료로 바이올린을 가르쳐 온 백주연(52) 씨는 “아이들과 만났을 때의 첫 눈빛을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너무나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 호기심 가득한 모습은 지난 1999년 이후 매주 한 번씩 백 씨의 발을 가덕도로 향하도록 했다. 그는 이러한 공로로 지난달 14일 행정안정부 국민추천포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백주연 씨가 가덕도 소양오케스트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백주연 씨가 가덕도 소양오케스트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


6일 부산 해운대로 자택 부근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소양보육원이 진행하는 소양오케스트라는 행복 그 자체였다. 보육원에서 준 바이올린을 들고 환한 얼굴로 자신을 찾아온 아이들의 모습은 오래전에 잊었던 열정을 되살렸다. “온몸을 모기에 물어뜯기면서도 바이올린을 켜며 행복해하던 아이들이 가슴속에 각인된 것 같아요. 그것을 보며 기뻐하는 내 자신도 보게 됐죠. 욕심 부리지 않고 편하게 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소양오케스트라가 생긴 것은 1998년. 지금은 고인이 된 지형식 원장이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1인 1악기를 가르치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다. 우선 선생님이 필요했다. 악기상으로부터 2명을 소개받았지만 단 한 번 오고 ‘너무 힘들다’며 두 손을 들었다. 왕복 6시간이 소요되니 그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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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백 씨에게까지 요청이 왔다. 그 역시 처음에는 거부했다. “처음에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한 번 가고 그만뒀죠. 1년 후 음악 캠프를 여니 한 번 와 보라고 하더군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다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봤어요. 아이들의 순수하고 밝은 모습을. 끝난 뒤 원장이 묻더군요. 언제 다시 올 거냐고. 그게 시작이었죠.”

백주연(왼쪽) 씨와 소양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난달 14일 행정안전부에서 개최한 제11기 국민추천포상 수상식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백주연 씨백주연(왼쪽) 씨와 소양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난달 14일 행정안전부에서 개최한 제11기 국민추천포상 수상식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백주연 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바이올린을 열심히 배운다. 문제는 사춘기. 눈빛부터 달라진다. 하기 싫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왜 음악을 배워야 하냐’며 반항하기도 한다. 야단을 쳐도 소용없었다. 방법을 바꿨다. 그는 “밤에 간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등 다독이고 보듬었다. 그제서야 아이들이 따라오기 시작하더라”며 “나중에 스스로 찾아와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는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을 배운 학생이 자신도 봉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는 보람도 느꼈다. 백 씨는 “초등학교 때 배운 학생이 서른 살이 넘어 자신도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 보겠다며 사회복지사가 됐을 때 너무 대견했다”며 “지금은 그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을 지원하겠다며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들어간 학생도 있다.

소양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그가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 음악에는 치유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자매결연을 맺었던 일본 학교에서 연주회를 가졌을 때의 일이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데 학생들이 따라 불렀다. 일본 선생님들이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지금까지 노래를 따라 부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학생들이 연주를 들으며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코로나19 탓에 잠시 활동을 접었다 얼마 전부터 격주로 향하는 백 씨에게 얼마나 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지 물었다. 백 씨는 “병들어 못 갈 때까지는 계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것은 내 소명”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얘들아, 우리 서로 사랑하자”는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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