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공급망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제기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돌연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 등 원자력발전소를 빨리 정상 가동하라고 지시했다. 임기 내내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문 대통령이 임기 말이 돼서야 에너지 정책 전환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25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 회의’를 열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위기 대응 방안을 보고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는 지진, 공극 발생, 국내 자립 기술 적용 등에 따라 건설이 지연됐다”며 “안전성 기준 강화와 선제적 투자가 충분하게 이뤄진 만큼 가능하면 이른 시간 내에 단계적 정상 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하라”고 주문했다. 이어 “원전에서 세계적인 선도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원전이 필요한 국가들이 한국의 기술과 경험을 높이 사 수입을 희망하는 만큼 수출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탈원전 기조를 사실상 내려놓은 것은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해결책은 결국 원전뿐이라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해외 자원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러시아 등 각국이 에너지를 무기화할 경우 이에 대항할 다른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탄소 중립’에 원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탈원전 추진에 대한 여권의 부담을 줄여준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말을 바꿨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오전 회의 자체를 비공개로 열고 지시 사항도 오후에야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 등을 오는 2084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황규환 국민의힘 선대본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보고서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던 지난 5년에 대한 자기부정”이라며 “대선 국면에서 탈원전 정책이 심판대에 오를 것 같으니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