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 등 대외 변수가 요동치면서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유가 등 원자재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려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경기가 타격을 받으면 긴축에 속도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권 교체와 후임 총재 인선 등 각종 정치적 변수로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3원 80전 오른 1206원 10전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지난달 3일(1206원 40전) 이후 한 달 만에 최고치로 4거래일 연속 1200원대다. 환율 상승과 함께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행보도 빨라질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1%로 예상하면서 긴축 명분을 강화한 만큼 강해진 만큼 오는 2분기 인상도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통화당국의 견제 대상으로 물가가 핵심적인 이슈로 부상했다”고 했다.
한은도 지난달 금리를 동결했지만 이는 연속 인상에 따른 숨 고르기일 뿐 여전히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올 연말 기준 기준금리가 1.75~2.0%에 이를 것이란 시장 전망에 대해 “합리적 경제 전망을 토대로 하고 있다”며 추가 인상 가능성을 내비친 상태다.
문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에 3월 9일 대통령 선거와 3월 31일 한은 총재 임기 만료 등 정치적 변수다. 후임 총재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한데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성장 둔화마저 나타나면 한은의 금리 인상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난 2011년 물가 급등기 당시 김중수 총재가 이끄는 금융통화위원회는 4%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수개월째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실물경기가 둔화 조짐을 보이자 기준금리를 수개월 연속 동결해 결국 인플레이션 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3.0%로 유지한 것은 성장 둔화를 이유로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가 금통위 성격을 ‘합의체 의결기구’라고 강조한 것도 차기 총재 변수를 줄이기 위한 방책이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는데 국제유가가 오르고 있어 당장은 인플레이션 해결을 우선순위에 둬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